그가 출연한 영화 '기생수(寄生獸)'는 2014년 말 개봉 당시 일본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 등 독립·예술영화에서도 하시모토 아이(橋本愛·21)는 다른 배우가 대신할 수 없는 존재감을 보여 왔다. 입술을 앙다물고 마음의 변화를 안으로 삼킬 때, 그의 얼굴은 어떤 눈물이나 웃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드러낸다. 그는 현재의 일본 영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보석이다.
오는 28일 영화 '해피 버스데이' 개봉을 앞두고 아이가 서면 인터뷰에 응했다. 열 살 때 세상을 떠난 엄마 '요시에'(미야자키 아오이)가 생전에 미리 써 놓은 생일 카드를 스무 살까지 매년 받는 딸 '노리코' 역할이다. '카모메 식당' '안경', 최근의 '행복 목욕탕'처럼, 우리 관객에게 사랑받는 일본 영화 중에는 '한없이 착한 사람들이 나오는 한없이 착한 영화'들이 있다. 따뜻한 웃음과 눈물 가득한 이 영화 역시, 대작 홍수에 숨 막힐 것 같은 추석 극장가에서 꽤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열 살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매년 딸의 생일마다 보내온 축하 카드엔 어떤 이야기가 씌어 있을까. 하시모토 아이 주연의 영화‘해피 버스데이’는 엄마 없이 자라는 한 소녀의 성장담인 동시에 가족·친구·사랑처럼 평범해서 더 갖기 힘든 가치의 고귀함을 다시 일깨우는 영화다. /티캐스트
어린 딸 '노리코'를 두고 떠나기 전, 불치병 엄마는 '왜 나는 저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없냐'며 울음을 터뜨린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고통이 누구에게나 있다. 아이는 "제가 구마모토(熊本) 출신"이라고 했다. 작년 4월 규슈 구마모토에서는 2011년 도호쿠(東北) 대지진 이후 최악 지진으로 225명이 숨졌다. "가족도 친구도 상처 입고 약해졌고, 여전히 그 영향이 남아 있어요. 살아가는 동안, 마음을 강하게 먹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새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끝나는 순간이 아니면 인생의 답은 알 수 없으니, 당장 '재미없다' 여겨지더라도 되도록 잘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늘 만족하기만 하며 살기란 어렵잖아요. 그보다는 만족을 느끼는 작은 순간을 소중히 쌓아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 '링'의 원귀(寃鬼)부터 홋카이도 산골 마을의 순박한 처녀까지, 영화 속 그의 캐릭터는 무척 다양한 범위를 오간다. 아이는 "연기란 결국 제 안의 어떤 부분을 끌어내 새롭게 조합하는 작업 같다"고 했다. "완전히 남과 다른 별개의 인간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타인에게서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죠. 어떤 모습을 연기로 표현할 때 거짓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에 배우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배우로서 스크린 위에 만들어내는 공기의 풍압(風壓)이 엄청난 분들을 존경한다"고도 했다. "인간으로서의 힘, 배우로서의 힘이 함께 압도적이어서 결코 타협하지 않는, 그러면서 동시에 여성의 강함도 갖춘 배우들요. 최근엔 '매드맥스'에서 여성 사령관 '퓨리오사'를 연기한 샬리즈 시어런을 보며 처음 '아, 저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네요."
이번 영화에서 딸은 모든 사람의 삶이 소중함을 깨닫고, 각자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아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은 진실에 다다른다. 엄마의 생일 카드가 중요한 장치다.
'당신의 이야기는 어떻게 써가고 싶으냐' 묻자, 아이는 "안정되고 평탄한 건 싫다"고 했다. "다양한 만남이 있고 지켜야 할 것이 있는, 또 얻는 것과 사라지는 것도 있는, 그런 시끌벅적한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요. 그 가운데 진정한 의미로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