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旗에도 세찬 '적폐 풍파'

전국 관공서와 도로변에 걸린 새마을 깃발이 수난을 겪고 있다. "유신 독재 시절이 떠오른다"며 구청에 깃발을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훼손하는 일이 벌어진다. 반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 새마을운동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며 철거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장평교(橋) 초입에는 도로 양옆으로 새마을 깃발 25개가 서 있다.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구청 홈페이지엔 장평교 새마을기(旗) 사진과 함께 '적폐를 없애자고 일어난 촛불이 무색하다. 태극기나 구청 깃발이 아닌 것은 철거해달라'는 민원 글이 올라왔다. 동대문구 새마을회 관계자는 "깃발을 내리라며 구(區) 새마을회에 걸려온 항의 전화가 올해만 40여 건"이라며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고 말했다.

◇새마을기 "철거하라" vs "지켜라"

새마을기 철거 민원은 다른 구청에도 계속 들어온다. 지난 20일 수원 영통구청엔 원천동 원천교 옆에 설치된 새마을 깃발 12개를 내려달라는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 6월엔 한 수원시의원이 '원천교에 새마을 깃발을 꼭 달아야겠느냐'고 문의해왔다. 지난 3월 서울 강서구청도 주민에게 비슷한 문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서울시 한 구청 관계자는 "특히 새 정부 들어선 이후 새마을기 철거 민원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민원 수준이 아니라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 10월엔 서울 동대문구 장평교와 용두교에 있던 새마을 깃발 52개의 줄이 끊어진 일이 있었다. 동대문구 새마을회는 한동안 깃발을 달지 않다가 올 5월에 줄 대신 철제 와이어를 달아 깃발을 게양했다.

새마을기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서울 동대문구 주민 최수영(53)씨는 "이만큼 먹고살게 된 게 새마을운동 덕분인데, 무조건 폄훼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소진광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한 해 개발도상국에서 400~500명이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한국을 찾는다"며 "우리나라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새마을운동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 새마을 깃발 설치 권한은 기초자치단체에 있다. 새마을 깃발을 게양하고 있는 자치단체는 대부분 '새마을운동 육성 조례'를 갖고 있다. 서울에만 63곳에 882개가 설치돼 있다. 잇따르는 민원에 철거를 한 곳도 있다. 광주광역시는 지난 1월 "유신 잔재 논란이 있고,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시민 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시청, 구청·기초의회 청사에서 새마을 깃발을 내렸다. 경기 성남시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시청 앞 새마을 깃발을 내리고 노란 세월호 깃발을 게양했다. 성남시 관계자는 "당시 성남시 새마을회의 양해를 구한 사안"이라며 "세월호 참사가 마무리되면 언제든지 새마을 깃발을 다시 걸 수 있다"고 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새마을 깃발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어, 철거 여부를 고심 중"이라고 했다.

◇새마을회, 여전히 활발한 활동

선뜻 철거하지 못하는 기초자치단체가 많다. 지역 봉사 등 새마을회 활동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 새마을회 회원은 210만명. 지역별로 부인회와 협의회 등을 만들어 소하천 정비 사업, 여성 안심 귀가 지원,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 등의 봉사 활동을 한다. 수원 영통구 관계자는 "새마을 회원들은 구청이 여는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자리를 채워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서울 은평구는 "새마을 깃발 관련 조례가 없지만 지역 새마을회 회원들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깃발을 게양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구청 관계자는 "골목길 청소 등 궂은 일도 많이 하기 때문에 이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새마을기 철거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전 정부 것을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마을 깃발

새마을 깃발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지 3년 뒤인 1973년에 만들어졌다. 흰색 ‘새마을’ 글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를 채자(採字)한 것이다. 1976년 당시 내무부가 각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게양하도록 하면서 전국 각지에 내걸렸다. 그러다 1994년 자율 게양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기관·단체의 장이 국민의 정서와 지역 여건 등을 고려하여 자율적으로 게양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1995년 당시 조순 서울시장은 지자체 중 처음으로 시청사 앞에서 새마을 깃발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