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뗄 돈없어 학교 포기하는 다문화가정 아이

구로구에 사는 중국 국적의 신모(17)양은 온종일 집에서 지낸다. 매일 아침 일찍 부모는 공장으로 출근한다. 신양은 집에 남아 다섯 살 난 동생을 돌본다. 혼자서 동생의 밥을 챙겨주고 집안일을 도맡는다. 신양은 지난해 6월 한국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아버지가 한국인 여성과 재혼하면서 한국에 들어왔다. 중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다녔지만, 지금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신양처럼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뒤늦게 부모를 따라 한국에 들어오게 된 청소년을 중도입국 청소년이라고 한다. 외국인 근로자인 부모를 따라 입국하거나,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들어온 아이들이다.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얼마나 들어왔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다. 2013년 여성가족부는 1만7000여명이라고 파악했지만 2015년 법무부는 체류 자격을 기준으로 4200명 정도로 추산했다.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미리 준비를 하고 한국에 온 일반 이민 가정의 자녀나 국제결혼가정의 자녀로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 자녀와 확연히 다르다. 준비 없이 갑자기 입국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언어부터 서툴다. 정서적 이질감도 크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다. 2016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다문화 가족 실태조사 분석에 따르면, 중도입국 청소년들의 56.6％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공증(公證) 서류를 준비하지 못해 입학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신양도 중국에서 학력을 증명하는 서류를 준비해왔지만 한국 학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양국 간 공문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협약인 아포스티유(apostille)가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체결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포스티유 미체결국에서 발급된 문서를 한국에서 인증받으려면 해당국에 주재하는 대한민국 공증담당영사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중국 현지에서 초·중·고 서류를 발급받아 공증을 받는 비용은 한화로 100만원에 달한다. 중국을 다녀올 비행기삯이 없는 신양은 서류 준비 비용은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2013년 16세 때 한국에 들어온 파키스탄인 지크라(20)씨도 같은 이유로 한국 학교에 다니고 싶던 꿈을 일찌감치 접었다. 한국인 어머니와 결혼한 파키스탄인 아버지를 따라 들어온 지크라씨는 입국 초반에 한국어가 서툴러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집에서 오빠와 시간을 보내거나 아버지가 이태원에서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일손을 거들었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중도입국 지원센터를 알게 돼 공부를 시작했다. 가나다부터 익힌 한국어로 3년 만에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지크라씨는 "지난 4년은 한국땅에서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 투쟁한 시간"이라며 "얼마 전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도 합격해 이제는 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신양이나 지크라씨와 같은 이들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센터는 서울에 2곳뿐이다. 2011년부터 중도입국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무지개청소년센터와 2015년 9월 서울시와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영등포구에 설립한 서울온드림교육센터다. 이들 기관은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검정고시 준비를 돕는다. 김수영 서울온드림교육센터장은 "가정 형편은 어렵지만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이 매일 아침 센터가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이런 아이들이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잘 정착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학교에 다니지 않아 친구가 부족한 중도입국 청소년들에게 한국인 친구를 만들어주는 또래 친구 사업을 시작했다. 관악구(1인 방송 제작)·구로구(합창)·금천구(난타·목공·영상 제작) 등 자치구 3곳에서도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구로구에서 한국 친구들과 합창을 배우는 중국 국적의 김세중(16)군은 "토요일마다 한국인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이 시간이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진다"고 했다. 중도입국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이 함께하는 합창반을 가르치는 강사 강은영(48)씨는 "한 주 한 주 노래가 늘 때마다 표정이 밝아져 가는 아이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