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더 암울해진 '디스토피아'… 35년 만에 돌아온 'SF의 전설'

SF 영화의 전설 '블레이드 러너'가 속편으로 돌아왔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지난 6일 미국 등 45개국에서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주말 동안 8100만달러(약 920억원)를 쓸어담았다. 이름값에 걸맞은 흥행 기세다. 해외 평단은 "전편에 필적하는 속편"이라며 열광하고 있다. 새 영화는 인간과 외계 생명의 소통에 철학적 메시지를 담았던 영화 '콘택트(Arrival)'의 드니 빌뇌브가 감독을 맡았다. 12일 국내 개봉.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작 '블레이드 러너'는 서기 2019년의 암울한 세계가 배경이었다. 2049년이 배경인 속편에서 영화 속 시간은 30년, 영화 밖 현실의 시간은 35년이 흘렀다. 여전히 산성비가 내리는 회색 도시, 인류는 생명공학 기술로 '리플리컨트'라 불리는 인조인간을 양산해 노예처럼 부린다.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 구(舊)모델 리플리컨트들을 추적해 제거하는 수사관이 블레이드 러너. 복종만 하도록 제작된 신형 리플리컨트이며 블레이드 러너인 'K'(라이언 고슬링)는 수사 과정에서 인간과 리플리컨트가 뒤섞인 불안정한 세계의 균형을 붕괴시킬지 모를 비밀과 마주친다. K가 그 비밀의 열쇠를 쥔 은퇴 블레이드 러너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찾아 나서고, 리플리컨트를 만들어낸 기업가 '월레스'(재리드 레토)가 K의 뒤를 쫓는다.

속편의 첫 번째 매력은 기대치를 가볍게 뛰어넘은 시각 효과. 시대를 앞서 갔던 전편의 광채를 훼손하지 않으며, 새로운 설정으로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스크린 위에 재창조했다. 명품 갤러리 같은 세트, 정교하게 구현된 미래 세계의 디테일이 경이롭다. 여주인공인 인공지능 홀로그램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도 신비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전편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압도적 시각 효과만으로 만족하지는 않을 터. 이 영화의 진가는 대사와 장면의 행간에 숨은 철학적 질문을 되새겨볼 때 드러난다. 전작은 제한된 4년 수명을 가진 리플리컨트들이 창조주인 대기업 타이렐의 총수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 신에게 던지는 질문 같은 철학적 주제를 다뤘다. 새 영화는 전편에서 이어져 온 '나는 누구인가'라는 데카르트적 질문의 바탕 위에, 인간의 오만과 정복욕,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의 질문으로 나아간다.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에 내던져진 피조물의 한계를 말할 때, 영화의 메시지는 처연하다. 자유의지를 거세한 리플리컨트의 창조주 '월레스'는 말한다. "너희는 내가 고통만 줬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고통을 사랑하는 건 너희야. 고통이야말로 진짜 기쁨을 떠올리게 하거든." 그러나 영화는 고통과 절망에 멈춰 서지 않고, 생명의 기적을 믿는 리플리컨트들이 행동하기 시작하는 결말에 이르러 희미한 희망의 빛을 흘린다.

복잡한 설정과 세계관, 명상적이라 할 만큼 정적(靜的)인 진행 속도 탓에 불친절하게 느낄 관객도 있겠다. 15세 관람가이지만 노출 수위가 만만치 않다. 상영 시간 16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