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癌 투병에도 미소 지은 간판 배우

"제가 그때는 주인공 하느라 워낙 바빠서 제 영화를 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13일 저녁 부산 영화의전당. '맨발의 청춘'(감독 김기덕·1964) 상영회가 끝난 뒤 백발이 성성한 배우 신성일(80)이 이렇게 말하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는 신성일의 대표작 8편을 상영하는 '한국 영화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주인공 신성일은 13~15일 사흘간 '맨발의 청춘'과 '안개'(감독 김수용), '길소뜸'(임권택)과 '별들의 고향'(이장호) 등을 관람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가졌다. 그는 "당시에는 영화배우를 '딴따라'라고 냉대했지만, 가난하고 힘들기만 했던 시절에 유일한 오락이자 종합 예술인 영화를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딴따라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고 했다.

14일 낮에는 해운대해수욕장 야외 무대에서 열린 핸드 프린팅(hand printing) 행사에 참여했다. 다음 날 오전에는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등 하루 3~4개의 일정을 소화했다. 신씨는 "20년 전부터 내 손자국을 부산영화제에 남기고 싶었는데 동갑내기인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에게 정중히 요청해서 오늘에야 그 소원을 푼다"고 했다.

신성일은 1960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500여편에서 주연을 맡은 한국 영화의 간판 배우다. '맨발의 청춘'은 단관(單館) 개봉했던 1964년 당시로는 기록적인 36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1967년에는 무려 51편을 촬영했다. 그는 "100여편에 함께 출연했던 윤정희씨와 가장 많은 영화를 촬영했고, 키스 장면은 '별들의 고향'에 함께 출연한 안인숙씨와 가장 많이 찍은 것 같다"고 했다.

신성일은 지난 6월 폐암 3기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다. 관객들의 질문도 건강 문제에 쏠렸다. 그는 "1차 치료를 5주간 받고 20여일간 휴식한 뒤 8월부터 다시 치료를 받았다. 의사가 '방사선 치료 몇 번만 더 받으면 더 이상 치료를 안 해도 좋을 만큼 기적적'이라고 한다"고 답했다.

영화제 측은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노배우를 위해 스크린 앞에 의자를 마련했다. 여든 살 배우는 한 시간 내내 앉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거나 무대를 걸어 다니면서 관객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는 "내가 남자 배우 중에서 운동은 가장 많이 했다. 촬영하다가 넘어져서 다치면 배우 생활을 못하니까. 어릴 적부터 육상과 평행봉, 수영과 권투를 가리지 않고 했고 유도 낙법(落法)도 배웠다. 기초 체력이 좋아서 지금도 끄떡없다"며 웃었다.

영화제 둘째 날 열린 '회고전의 밤' 행사는 충무로의 전성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물론 강우석·강제규·김수용·이두용·임권택·정지영·정진우 감독과 배우 김희라·안성기·윤정희 등이 참석했다. 안성기는 "내가 아역 배우로 데뷔할 무렵인 50여년 전에도 이미 그는 대형 스타였다"면서 "오늘날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도 그가 일궈놓은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제 동안 신성일은 최근 한국 영화에 대해 "사회 고발한다는 명분으로 잔인하고 살벌하게 치고받고 칼로 찌르며 분노와 복수를 일삼고 있다. 영화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년에는 영화 '행복'을 찍고, 내후년에는 김홍신의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도 제작해서 나이 많은 신성일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다"고 했다. 올해 부산영화제 초반 주인공은 단연 신성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