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로 고! 고!… 직행 티켓 따내다

"방금 전 홀에서 실수하고 바로 버디 잡잖아. 정말 강심장이야." "LPGA에서 몇 년 뛴 선수 같아."

지켜보던 팬들이 감탄할 정도로 고진영(22)의 플레이는 인상적이었다. 3만명 넘는 팬들이 펼쳐내는 뜨거운 열기에다 박성현(24)·전인지(23)라는 스타들과 한 조에서 우승 경쟁을 하는 중압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무섭게 추격하던 박성현은 "(고)진영이가 너무 잘 쳐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고진영이 15일 국내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인천 스카이72골프클럽 오션코스)에서 우승하며 LPGA 직행 티켓을 따냈다. 영문으로 'GO'라는 모자를 쓴 고진영 팬클럽 회원들은 "LPGA로 고! 고!" 하며 기뻐했다.

고진영은 이날 2타 차 선두로 출발해 버디 6개, 보기 2개로 4타를 줄이며 합계 19언더파 269타를 기록, 역시 4타를 줄인 박성현(17언더파)을 2타 차로 제쳤다. 전인지가 3위(16언더파)였다.

고진영은 이날 우승으로 2014년 프로 데뷔 이후 국내 투어 9승을 포함해 10승째를 거두며 상금 30만달러(약 3억4000만원)를 받았다. 특히 이 대회 우승으로 LPGA 직행 카드를 따낸 '신데렐라' 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고진영은 원할 경우 올 시즌 남은 대회를 포함해 내년 LPGA에 풀로 출전할 수 있다. 이 대회를 통해 안시현·이지영·홍진주·백규정이 '비회원 우승'을 차지하며 LPGA 투어 직행 티켓을 따낸 바 있다. 고진영은 "LPGA 투어 진출은 부모님과 상의해서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며 "올해는 KLPGA 투어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앞서 '신데렐라'가 되면서 갑작스럽게 LPGA 투어에 진출한 뒤 고전한 선배들의 사례가 부담스러운 듯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고진영은 2년 전 브리티시 여자오픈의 아픔을 떠올렸다고 한다. 당시 외국 대회에 처음 출전한 고진영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선두를 달리다 박인비에 밀려 준우승했다. 고진영은 "지금은 체력, 멘털, 샷이 훨씬 나아졌다"고 했다.

초반엔 흔들렸다. 2번홀(파4) 보기로 이 홀에서 버디를 잡은 박성현에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3번홀(파3)에서도 연속 보기를 하며 선두 자리를 내줬다. 고진영은 "그땐 너무 당황했다. 긴장할 이유가 없는데 혼자 프레셔(압박감)를 느끼고 있었다"며 "캐디 딘 허든이 '(결과) 받아들이고 네 플레이를 하라'는 조언을 해줬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세계 랭킹이 1위로 점프하는 박성현(랭킹 2위)의 추격은 무서웠다. 박성현은 4·5번홀 연속 버디를 잡으며 치고 나갔다. 고진영은 7~9번홀 연속 버디로 재역전에 성공했다가 11번홀에서 1m 버디 퍼트를 놓치며 박성현과 다시 공동 선두가 됐다. 이런 실수를 하면 흔들릴 법한데, 고진영은 오히려 12번홀(파3)에서 버디를 잡아 다른 선수들의 기를 죽였다.

마지막 승부처는 짧은 파4홀인 15번홀(파4·257야드)이었다. 승부를 건 박성현이 원온에 성공했지만 이글 퍼트가 살짝 빗나갔고, 투온 작전을 편 고진영이 까다로운 버디 퍼트에 성공하면서 2타 차이가 유지됐다.

LPGA에서도 최정상급인 아이언샷에 강력 멘털까지 갖춘 고진영이 LPGA에 진출한다면 이제와는 전혀 다른 무서운 '신데렐라'가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