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 내 골프는 이제 시작"

"이제 시작이에요. 골프를 제대로 칠 수 있는 키(열쇠) 하나를 얻었으니까요."

지은희(31·한화·사진)는 조로(早老)하는 선수가 많은 한국 여자 골프에서 '연구 대상'이다. 서른 넘어 다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우승한 것도 그렇고 오랜 부진을 이겨낸 집념도 놀랍다. 전날 대만 스윙잉 스커츠 챔피언십에서 8년 3개월 만에 LPGA 우승컵을 다시 들어올린 지은희는 23일 다음 대회 장소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이동했다. 지은희와 전화가 연결됐다.

"솔직히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반짝' 성적이 나오니…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죠."

그의 카카오톡에는 전날 우승컵을 들고 활짝 웃는 모습과 함께 느낌표가 5개 찍힌 '드디어 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가 2승째를 올렸던 2009년 US여자오픈 현장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지은희는 당시 "험난한 US여자오픈 코스를 보면서 끝까지 버티는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 명예의 전당에 가입할 수 있는 유명 골퍼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었다. 여자골프 최고 권위의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 그가 1승 추가를 위해 3025일을 기다리고, 203개의 대회를 더 치러야 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4라운드 열리는 날 새벽 2시와 4시에 잠을 깰 정도로 긴장했다"며 "우승이 너무 오랜만이라 크게 앞선 채 18번홀에 들어갈 때도 떨렸다"고 했다. 그는 태풍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친 대만에서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고 리디아 고(20)를 6타 차이로 제쳤다.

그는 8년 전 US여자오픈 때 남자 프로도 거의 쓰지 않는 7.5도 드라이버를 사용해 화제를 불렀다. 남자와 팔씨름을 해도 이길 정도로 힘도 좋았지만 퍼올리는 스윙을 하기 때문에 낮은 로프트(클럽 헤드의 각도)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2010년부터 스윙 교정에 들어갔다. 오히려 문제가 생겼다. 그는 "새로운 스윙으로 공이 잘 안 맞으면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고, 그러다 더 큰 문제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고 했다.

그는 올해 다시 스윙을 가다듬었다. 2013년부터 함께한 캐디와 김상균 한화 골프단 감독이 그의 스윙 교정을 도왔다. 점점 희망이 생겼다고 한다. 이제 그는 퍼올리는 스윙을 하지 않는다. 일관성이 좋아졌다. 그는 요즘 9도 드라이버를 쓴다.

어려서부터 웃는 모습이 닮았다고 붙은 '미키마우스'라는 별명은 여전히 그를 떠나지 않는다. 취미인 레고와 건담 조립도 계속하고 있다. 이제야 3승을 거둔 그가 명예의 전당까지 갈 수 있을까? '인내심의 여왕'이 뭘 더 참아내고 이룰지 모르는 일이다.

그는 어린 시절 경기도 가평에서 아이언 샷으로 청평호에 떠 있는 스티로폼 부표를 맞히는 훈련을 하며 골프를 배웠다. 물에 뜨는 공을 사용했다. 수상스키 대표팀 감독이었던 아버지 지영기씨가 어떤 상황에서도 타깃을 맞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만든 훈련법이었다. 그는 "참 재미있게 골프를 배웠는데 지금도 여전히 즐겁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