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시간 되면 역무원은 떤다, '酒暴 펀치' 날아올까봐

지난 1일 밤 12시 무렵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 그날 운행을 마친 2호선 열차 안에 역무원 1명, 사회복무요원 1명과 함께 올랐다. 차량 기지로 돌아갈 때까지 남은 1분여 동안 열차 안에 남은 승객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20대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술에 취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김종훈 부역장이 안 나가겠다고 버티는 이 남성을 간신히 부축해 데리고 나왔다. 잠시 후 개찰구 앞에는 60대 남성이 쓰러져 있었다. 흔들어 깨우자 "당신이 뭔데 나를 깨우느냐"며 소리질렀다. 김 부역장은 "막차 시간이 되면 술에 취해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했다.

◇버티고 때리는 승객들… 괴로운 역무원

지난 8월 8일 오후 11시 30분쯤 서울 2호선 신림역 역무원 손모(46)씨는 안내 부스 옆에서 자는 중년 남성을 흔들어 깨웠다. 술 냄새를 풍기던 이 남성은 "귀찮게 굴지 마라"며 주먹으로 손씨 얼굴을 때렸다. 손씨는 코뼈가 부러져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어린 아들 앞에서 차마 '손님한테 맞아 코 부러졌다'고 말할 수 없어 넘어졌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하철 안전과 운행을 책임지는 역무원들이 폭력에 신음하고 있다. 역무원은 코레일·서울교통공사 등 공기업 소속 직원이다. 공공성이 강한 철도 서비스 특성상 역무원을 해코지하면 공무집행방해죄에 준하는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역무원에 대한 폭행은 갈수록 는다. 서울지하철 역무원 폭행 사건은 2014년 54건에서 2016년엔 114건으로 증가했다. 올해 들어 7월 말까지 총 71건, 사흘에 한 번꼴로 매 맞는 역무원이 나온 셈이다.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악성 민원을 제기하며 버티는 승객들이 있다. 노용주(56) 서울역 부역장은 지난달 퇴계로가 어디냐고 물어보는 60대 여성 승객에게 "퇴계로는 넓으니, 구체적으로 몇 가(街)를 가려고 하시나요" 하고 되물었다. 이 승객은 "대답하는 태도가 불량하다. 인터넷에 올리겠다"며 노 부역장 얼굴을 휴대전화로 찍었다. 노 부역장은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닐까 봐 불안해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지하철역 노숙인들과는 늘 긴장 관계다. 역무원 김모(35)씨는 지난 3월 역 안에서 자던 노숙인을 깨우다가 경찰에 신고를 당했다. 오전 1시쯤 역 셔터를 내리려고 자고 있던 노숙인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 노숙인은 "지금 나를 때리는 것이냐"며 경찰을 불렀다. 이 노숙인은 "사과하지 않으면 역에서 나갈 수 없다"고 버텼다. 출동한 경찰은 "사과하고 빨리 끝내자"고 했다. 서울역에 상주하는 노숙인은 30여 명. 날이 추워지면 100명까지 늘어난다. 이시만(57) 서울역장은 "새벽마다 노숙인을 역 밖으로 내보내면서 승강이를 반복한다"고 했다. 2015년엔 역무원 김모(41)씨가 노숙인을 깨우려 다가가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맞아 이가 부러지는 일이 있었다.

◇공포의 막차 시간

 

역무원들이 가장 긴장하는 때는 막차 시간대다. 늦은 밤, 술에 취해 귀가하는 승객이 많아 이들을 상대하는 도중 폭행을 당하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집계한 작년 역무원 폭행 중 55%가 심야 시간(오후 11시~다음 날 오전 2시)에 발생했다. 특히 젊은 여성 역무원들에게 취객의 난동은 큰 후유증을 남긴다.

지난 2월 서울 2호선의 한 역에선 20대 여성 역무원이 술 취한 대학생에게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다가 발길질을 당했다. "입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며 때린 것이다. 배를 맞고 쓰러진 여성 직원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한 달간 병가를 냈다. 같은 달 1호선 동묘앞역에선 30대 여직원이 비상구로 몰래 들어가던 승객을 제지하다가 '××년'이라는 욕설을 들었다. 도우러 온 사회복무요원은 얼굴을 얻어맞았다.

철도안전법에 따라 역무원을 폭행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역무원 폭행이 잇따르자 지난 8월엔 술에 취하거나 약물을 복용한 채 열차에서 소란을 피우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철도안전법을 개정했다. 이 법은 내년 2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열차 안에서 소란을 피우면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5만원 벌금을 내거나 즉결심판(20만원 이하 벌금)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