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히어로가 먹여 살리는 할리우드

25일 개봉한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는 수퍼히어로 영화의 정석을 보여준다. 토르가 헐크와 힘을 합쳐 죽음의 여신 '헬라'(케이트 블란쳇)와 맞서는데, 시리즈 특유의 유머, 신나는 액션, 적당한 영상미, 초호화 캐스팅, 다른 만화 주인공 영화들과의 연계까지, 시리즈 팬들이 원할 만한 모든 것을 갖췄다.

세 번째 토르 영화이자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최신작인 이 영화에서, 주신(主神) '오딘'(앤서니 홉킨스)은 아들인 천둥의 신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에게 마지막 작별의 말을 한다. "이젠 다른 길을 가야 해." 그런데 오딘과 달리,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다른 길을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올해에만 '로건'(이십세기폭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마블), '원더우먼'(워너브러더스), '미이라'(유니버설), '스파이더맨: 홈 커밍'(소니·마블) 등이 개봉했고, 토르 뒤엔 DC코믹스 원작의 야심작 '저스티스 리그'가 11월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할리우드의 수퍼히어로 사랑은 통계로 드러난다. 작년에 개봉된 세계 흥행 수입 상위 20편 영화 중에 블록버스터 수퍼 히어로 영화는 6편. 10년 전인 2007년에는 수퍼히어로 영화가 두 편 뿐이었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년전 11.5%에서 작년 32.7%로 비약적 성장을 이뤘다.〈그래픽〉

시장의 변화에 원인이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글로벌 영화 시장 매출 중 미국의 자국 시장 규모는 2007년 35%에서 작년 28%까지 줄었다. 반면 중국 시장의 비중은 같은 기간 1.77%에서 16.88%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인터스텔라' 제작자 린다 옵스트는 이전 본지와 인터뷰에서 "과거엔 미국과 외국 매출 비중이 7대3이었는데, 2000년대 후반 그 비율이 3대7로 역전됐다. 제작비는 치솟는데 수익률은 떨어지면서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 등 신흥국 시장 매출에 크게 의존하게 됐고, 익숙한 주인공과 스토리를 갖춘 수퍼히어로나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필요해진 것"이라고 했다.

다양한 분야 히트 상품의 성공 비결을 분석한 책 '히트 메이커스'를 쓴 데릭 톰슨은 할리우드의 이런 전략을 "더 크고, 더 시끄럽고, 더 안전한 영화 만들기"라고 짚었다. 신흥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낯익은 A급 배우들의 캐스팅,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은 필수. 제작비 규모는 더 커지고, 편당 3500만달러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을 쓰니 시끄러워지며, 공장식 작가 시스템과 사전 시사를 통한 수정으로 안전하게 흥행이 가능한 영화를 만든다. "평균적 관객이 평균적으로 좋아할 만한, 평균적으로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수퍼영웅물은 '로건' 같은 서부극의 형식과 스타일, '스파이더맨: 홈 커밍'처럼 성장 영화의 외피를 입혀 비슷하지만 새로운 영화로 만들어내기에도 딱 좋다. 새것이지만 낯설지 않아 관객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소위 'MAYA'(Most Advanced but Acceptable) 전략이다. 이 전략으로 최고의 성과를 올린 회사가 디즈니. 2016년 개봉 영화 중 흥행 수입 1위부터 5위까지 전부 디즈니 영화였는데,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해 디즈니가 만든 영화 13편이 전 세계 영화 매출의 5분의 1을 가져갔다"고 했다.

영화시장 분석가 김형호씨는 "수퍼히어로 영화들은 미국 국내 흥행 수입에 비해 해외 수입이 평균 1.7배 정도 된다. 다른 영화들보다 평균 20% 이상 많은 셈이니,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에 수퍼히어로물은 해외 시장에서 큰돈을 벌어들이는 효자 상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