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 처음부터 짜고 섬마을 교사 성폭행

대법원이 26일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형량을 대폭 깎아줘 논란을 불렀던 2심이 재판을 잘못했다며 다시 재판하라고 했다. 대법원은 가해자들에게 더 무거운 처벌을 하도록 1·2심이 무죄로 봤던 부분을 유죄로 바로잡았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전남 신안군의 섬 학교 여교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주민 박모(50)씨와 김모(40)·이모(36)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7~10년을 선고한 2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박씨 등 3명은 같은 동네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지난해 5월 21일 오후 이들은 박씨 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이 마을 초등학교 교사에게 접근해 술을 권했다. 박씨 등은 모두 교사가 재직 중인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였다.

박씨는 이날 밤 11시쯤 교사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자 자기 차에 태워 학교 관사로 데려가 성폭행하려다 교사가 저항하자 미수에 그쳤다. 뒤따라간 이씨와 김씨도 10여 분 간격을 두고 관사로 들어가 범행을 시도했으나 교사가 저항해 밖으로 나왔다.

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한 시간쯤 기다리다 다음 날 새벽 1시쯤 교사를 차례로 성폭행했다. 교사는 1년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 검찰은 박씨 등이 처음부터 서로 짜고 일을 벌였다며 모두 재판에 넘겼다.

그런데 1심인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미수에 그친 1차 범행은 공모(共謀)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박씨 등에게 징역 12~18년을 선고했다. 1심은 박씨 등이 범행 당일 각자의 차로 관사로 갔다는 점이 공모가 아니라는 근거라고 했다. 처음부터 짰다면 같은 차를 타고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씨는 "박씨가 처음 성폭행을 시도할 때 박씨에게 안 들키려고 숨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 역시 공모는 아니라고 본 근거가 됐다.

광주고법(2심)은 1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박씨 등이 피해 교사와 합의를 했다"며 징역 7~10년을 선고해 형량을 대폭 깎아줬다. 이로 인해 여론은 물론 법조계 내부에서도 "가해자들의 죄질과 사건의 사회적 파장 등을 감안할 때 지나친 감형"이라는 비판이 컸다.

대법원은 1·2심 판단을 완전히 뒤집었다. 대법원은 판결문 외에 이날 A4 용지 1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별도로 내서 1·2심의 오류(誤謬)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대법원은 우선 박씨 등이 각자의 차를 이용한 것에 대해 "가해자의 차량이 화물차 등이어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교사와 다 함께 타기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여교사를 태운 박씨가 뒤따르던 이씨의 차를 발견하고 제지하지 않은 점 등을 봐도 공모 관계를 부정할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도 했다.

대법원은 '박씨에게 안 들키려고 숨어 있었다'는 이씨 진술에 대해서도 "이씨는 범행 당시 자신의 차량을 박씨 차량 바로 뒤에 주차해 놓았는데, 그런 마당에 숨어 있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박씨 등이 범행 후 피해자를 혼자 두고 관사를 나서면서 문을 잠그지 않았던 점 등은 범행에 대한 합의가 있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렵다"며 "공모 범죄는 여러 간접 사실과 정황 등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해 사실 관계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1·2심이 사실 관계를 틀리게 파악했거나 잘못 해석했다는 지적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유죄 부분이 늘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형량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