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에 지친 귀… 감미로운 멜로디에 꽂히다

볼빨간사춘기, 윤종신, 그리고 멜로망스. 올해 가요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이 세 팀의 가수에겐 3가지 공통점이 있다. 셋 다 대형 기획사와 TV 중심 마케팅의 뒷받침 없이 디지털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여성 듀오 '볼빨간사춘기'는 작년 9월 발매한 정규 1집 타이틀곡 '우주를 줄게'가 차트 100위권 밖으로 나갔다가 뒤늦게 화제가 되며 '역(逆)주행'했다. '우주를 줄게'는 결국 7개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이후 지난달 내놓은 신곡 '썸 탈 거야'도 아이유, 방탄소년단 등 쟁쟁한 아이돌 가수를 제치고 곧바로 1위에 등극해 한 달간 정상을 지켰다.

윤종신과 남성 듀오 멜로망스도 올해 '깜짝 1위'의 아이콘이 됐다. 윤종신은 지난 6월 '좋니'를 발매한 뒤 두 달 만에, 멜로망스는 7월 발매한 '선물'로 석 달 만에 7개 차트 1위를 했다. 둘 다 차트 100위 인근에서 시작해 1위까지 서서히 올라갔다. 아이돌과 댄스 음악 위주의 가요계에서 이들의 선전 비결은 뭘까.

◇'아이돌 안 듣는' 시장

볼빨간사춘기와 윤종신, 멜로망스의 차트 1위 곡 청취자 데이터를 보면 셋 다 남자 청취자의 비중이 높다. 워너원이나 엑소, 레드벨벳 등 올해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멜론 차트 1위를 한 아이돌 가수의 노래는 남성 청취자 비중이 10~30% 수준이었다. 반면 이 세 팀은 남성 청취자 비중이 50%에 가깝다. 멜론의 남녀 가입자 비중은 약 48%대 52%로 비슷하다. 멜론 관계자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1위로 만드는 데 여성 이용자의 역할이 큰 반면, 다른 차트 1위 노래의 경우 남성 이용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힙합 음악이 별다른 마케팅 없이 차트에서 선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거칠고 직설적인 가사를 특징으로 하는 힙합이 남자 청취자 취향에 맞는 것이다. 음악평론가 미묘씨는 "디지털 음원 시장의 주 소비자가 20대인데 이 중엔 '아이돌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을 소비하려는 성향이 뚜렷한 층이 있다"며 "이런 소비층은 힙합뿐 아니라 버스커버스커나 십센치 같은 소위 '인디'로 분류되는 음악에도 쏠리는데 볼빨간사춘기나 멜로망스 등도 비슷한 경우"라고 말했다.

◇신선하면서도 친근한

또 다른 공통점은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를 내놓는다는 점이다. 노래방 인기곡 차트에서 이들의 노래가 몇 달째 10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는 여러 명이 같이 부르는 데다가 빠른 댄스 음악이라 따라 부르기 어려운 반면, 윤종신 등은 주로 발라드나 중간 박자의 노래라 따라 부르기 좋다. 소셜미디어에서 전파도 빠르다. 노래를 잘 부르는 일반인들이 자신이 따라 부르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뿐 아니라, 최근에는 인터넷 방송 BJ들이 길거리에서 이런 노래를 잘 따라 부르는 사람을 발굴하는 방송이 유행을 타고 있다. 이런 영상과 방송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소문을 탄다.

소문을 타기 때문에 차트 순위 상승도 서서히 이뤄진다. 과거 히트곡이 음반 가게나 길거리 노점상들이 자주 틀어주는 이른바 '길보드차트'를 통해 소문을 탔던 것이 소셜미디어 시대에 맞게 부활하는 양상이다. 물론 완성도 있는 음악이 성공의 기본 조건이다. 음악평론가 김성환씨는 "볼빨간사춘기나 멜로망스의 음악은 아이돌과 드라마 OST 일색의 가요 시장에 질려 있던 젊은 세대에겐 오히려 신선하게 들렸을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부담 없이 편안하고 친근하게 들릴 수 있는 일상의 현실적 감성을 완성도 있는 곡으로 내놓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