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붙인 CCTV 영상, 그 속에 드러난 '삶의 맨얼굴'

쉬빙(徐冰·62)은 중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로 첫손에 꼽힌다. 미국에서 18년간 활동하다 2007년 귀국해 중국 최고의 미술 고등교육기관인 베이징중앙미술학원 부원장을 지냈다. 무의미한 가짜 한자(漢字) 목활자 4000개로 찍어낸 설치 작품 '천서'(天書·1989)는 유동적이며 불확실한 언어의 속성을 폭로했고, 이모티콘만으로 쓴 이야기 책 '지서'(地書·2012)는 언어의 차이를 넘어선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그가 첫 영상 작업인 영화 '잠자리의 눈'을 만들며 사용한 재료는 인터넷에 흘러 넘치는 CCTV 영상이다. 지난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쉬빙은 "삶은 예술보다 훨씬 혼란스럽고 비논리적이다. CCTV 영상은 그걸 드러내는 매력적 소재"라고 했다. "100시간 동안 미동도 않다가 갑자기 격렬해져요. 별것 없는 일상인 듯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요."

영화 '잠자리의 눈'은 무의미한 CCTV 화면을 이어 붙이고 음성을 입혀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남자는 어릴 적 연인이었던 여자가 성형수술 뒤 인터넷 방송 스타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말실수로 비난받던 그녀가 자살해 버린다. 성형수술과 외모 집착, 인터넷의 빈 껍데기 인간관계 등을 다루지만, 그걸 구성하는 화면은 이야기와 무관하다.

이야기의 흐름과 상관없이 불쑥불쑥 끼어드는 영상은 충격적이다. 다리 위를 걷던 여자가 추락해 천천히 익사하고, 집 안에서 속옷까지 벗고 있는 남녀도 등장한다. 공공장소부터 내밀한 개인의 공간까지 모두의 일상이 무차별 노출되고 있음을 일깨운다.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는데 일거수일투족이 찍히고 공개되며, 빅데이터 회사들은 그걸로 돈을 벌죠. 사회가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우리 사고방식, 전통적 법·철학·예술 등은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허덕입니다."

 

근래 수년간 세계 미술 시장에서 중국 미술가들의 작품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중국 미술의 재평가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현금이 풍부해진 중국인 '큰손'들이 만들어낸 거품으로 보기도 한다. 쉬빙은 "국제시장에서 중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예술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그는 "중국은 실험적 시도를 많이 할 수 있는, 예술가로 살아볼 만한 나라"라고 했다. "사회문제도 많고, 불확실한 부분도 많아요. 거기서 나오는 영감을 승화시키면 좋은 예술 작품이 나올 수 있어요. 이 영화 '잠자리의 눈'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중국의 불확실한 현실이 가진 힘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