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서 고기파티 막자… 술취한 등산객은 돌을 들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도봉산 중턱. 공원 단속원 2명과 정식 등산로가 아닌 샛길로 들어갔다. 등산객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다. 저 멀리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50대 여성이 가방을 풀고 등산화를 벗은 채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단속원 김중호 주임이 "출입 금지 구역이다. 자연공원법 위반"이라고 말하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여성은 "산에 신분증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느냐. 다음에 안 하면 되지 유난을 떠느냐"며 오히려 항의했다. 승강이 끝에 김 주임은 여성의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 '착한 탐방 안내장(지도증)'을 내줬다. 지도증을 받으면 당장 과태료를 내지 않고, 1년 내 다시 적발되면 과태료 10만원을 내야 한다.

산 속에서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일은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산림청 산하 국유림관리소 직원들이 맡고 있다. 국립공원이나 국유림에서 취사하거나 불법으로 임산물을 채취하는 사람, 입산 금지 구역 출입 등을 적발한다. "잘못되면 내가 책임진다" "불법인 줄 몰랐다"며 항의하고 버티는 사람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계곡서 고기 굽고 알몸 목욕도

등산객들의 불법행위는 계절을 탄다. 봄·가을엔 주로 나물·버섯 등을 캐고 여름엔 계곡 주변에서 불법 취사를 한다.

 

작년 7월 박병락 지리산국립공원 함양분소 팀장은 한 계곡에서 돗자리를 깔고 고기를 굽던 세 남성을 적발했다. 이들은 술에 취해 있었다. 과태료를 물리려 하자 한 사람이 "불나면 내가 책임진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머리 깨지고 싶냐"며 돌을 들어 위협했다. 주변 등산객이 그를 진정시켰다. 박 팀장은 겨우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했다.

지난 8월 광주광역시 무등산 국립공원사무소 직원들은 벌거벗은 등산객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노인 등산객들이 옷을 홀딱 벗은 채 계곡에서 멱을 감는다'는 신고가 매일 두세 건씩 들어왔다. 직원들이 출동하니 70대 노인 셋이 알몸으로 계곡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이들은 "물속에 있으면 벗은 게 안 보인다" "보는 사람이 이상하다"며 따졌다. 무등산 사무소 관계자는 "계곡에서 목욕이나 빨래를 하면 과태료(10만원) 부과 대상이다. 고령이어서 계도만 해 돌려보냈다"고 했다.

가을 단풍 철이 되면 더 바빠진다. 등산로가 아닌 곳으로 빠졌거나 불법 취사, 흡연하는 등산객을 찾기 위해 직원들은 넓은 산에 흩어진 샛길들을 돌아다녀야 한다. 길을 잘못 들었거나 추락 사고로 다친 등산객 신고 때문에 소방관 등과 함께 출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단속원은 "빵 몇 개로 산에서 점심·저녁을 때우기 일쑤"라고 했다.

◇"술 취한 등산객이 산짐승보다 두렵다"

단속원들은 "술에 취해 무리 지어 다니는 등산객들이 산짐승보다 더 두렵다"고 입을 모은다. 민웅기 국립공원공단 차장은 "오전에 순한 양이었던 등산객들이 정상에서 막걸리 한잔하고 내려오면 돌변한다"고 했다. 지리산의 한 대피소로 만취한 등산객 대여섯 명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대피소엔 빈자리가 없었다. 이들은 "여성 환자가 있으니 직원이 묵는 방이라도 내놓으라"고 했다. 대피소 직원이 환자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하자 한 남성이 "나를 못 믿느냐"며 직원 멱살을 잡았다. 결국 경찰을 불러야 했다. 곽홍용 계룡산국립공원 자원보전과 계장은 "출입 금지 구역에 있던 산악회원을 단속하자 20~30명이 우르르 몰려와서 한꺼번에 소리친 적이 있었다"며 "산에선 주변에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지, 단속원들에게 함부로 한다"고 했다.

국립공원에 있는 임산물을 무단으로 채취해가는 사람도 많다. 봄에는 산나물·산약초, 가을에는 버섯·도토리·밤 등을 따러 온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가 몰래 캔다. 지난 9월 초 덕유산 국립공원에서 50대 남성이 버섯을 캐다 적발됐다. 그의 가방과 스티로폼 상자에는 송이버섯·능이버섯·상황버섯 등 9㎏ 정도의 버섯이 들어 있었다. 한 단속원은 "전문 약초꾼 중에선 불법 채취하다 걸리면 잽싸게 산길로 달아나는 이가 있다. 산을 워낙 잘 타서 뒤쫓아 갈 수 없다"고 했다. 일반 등산객들도 도토리나 밤을 하나둘씩 집어 간다. 서상원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 계장은 "일단 적발되면 '모르고 왔다' '초행길이다'하며 발뺌부터 한다"며 "더 많이 캐겠다며 길이 아닌 깊은 산 속까지 들어온 사람들이 이런 변명을 하면 기가 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