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닌 진정한 노노족(NO老族)이세요"
다시 여행길에 오르려는 날 두고 며느리가 하는 말이다. 기분이 좋다. 노노족(NO老族)은 나하고 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나에게도 노노족(NO老族)이라는 별칭을 붙여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요즘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노노족(NO老族)이라는 말이 들린다. 글자를 풀어보자면 ‘노(No)’와 ‘노(老)’를 합성해 만든 말이다. 늙지 않는 노인, 혹은 나이는 들었지만 젊게 사는 노인이라는 말이다. 건강한 체력과 재력을 갖춘 사람으로 젊은이 못지않게 살아가는 6~70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고, 문화예술 분야의 활동이라든가 봉사활동의 최전선에서 열심히 사는 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친구 A는 며칠 전에도 여행길에 올랐다. 또 스페인의 어느 시골 길을 유유히 걷고 있을 것이다. 퇴직하자마자, 가방 하나 달랑 메고 한 달 동안 이탈리아를 돌고 돌아왔다. 지인들 모두가 입을 딱 벌렸다. 평소의 그녀라면 수줍음 많고 자기주장 한 번, 강하게 내놓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그녀다. 그런 그녀가 혼자 하는 여행. 그것도 외국여행이라니 놀랄 수밖에 없다. 멋모르고 한 번 가겠지 했다. 이탈리아를 가더니 이번엔 스페인 공략에 들어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돌아오더니 또 가고 또 간다. 우린 아직도 그녀의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아리송하다.
친구 B는 지금 베트남에 살고 있다. 작년엔 이탈리아에 올 5월엔 영국에 한 달 살러 갔다 오더니 이번엔 베트남에 한 달 살러 갔다. 가 보고 싶은 나라를 힘이 닿을 때까지 한 달씩 살아 보겠다는 것이 이 친구 목표란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나로서는 얘들이 지금 뭐 하나 싶기도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얘들만큼 공부를 못 한 것도 아닌데 얘들은 영어를 자신 있게 구사하며 지구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데 나는 뭐지 싶기도 하다. 나 자신이 너무 작아지게 만드는 친구들이다.
친구 C는 스포츠댄스 삼매경에 빠져 있다. 사실 주변에선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친구나 나나 음치에 몸치다. 그런 그녀가 퇴직 후에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스포츠 댄스에 눈을 돌렸다. 아무리 아파도 강습에 빠지는 법이 없다. 모임도 시간을 뒤로 좀 미루자고 사정까지 하며 열심이다. 얼마나 열심인지 들려주는 얘기로는 강사분도 인정하는 솜씨인 모양이다. 가을이면 대회도 나가고 발표회에 나간다.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친구 D는 벌써 5년째 전국 순례 중이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길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전국 방방곡곡 안 다니는 데가 없다. 이름난 곳만 다니는 게 아니다. 유명 관광지는 물론이고 오지란 오지도 다 다니고 있다. 그 지치지 않는 기운이 어디서 나오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모여 앉으면 농담 삼아 말한다. 우리 몰래 산삼 키워 너 혼자 먹는 거 아니냐고 같이 먹자고 하지만 그녀의 그 체력이 마냥 부럽다.
E는 지금, 한국 국제협력단(KOICAㆍ코이카) 일원으로 외국으로 떠나겠다고 한참 준비 중이다. 무식하고 겁이 많은 우리는 위험해서 안된다고 말리고 있지만, 그녀의 결심은 확고하다. 재직 중에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언가 배우러 쫓아다니더니 결국 그 성격이 이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무의미하게 그냥 세월을 보내기 싫다고 가야겠다는데 말릴 재주가 없다. 나도 한때는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영어 울렁증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참,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새삼 영어 공부 좀 해 보겠다고 했지만 작심삼일이었다.
이런 친구들을 보면 가끔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을 때가 있다. 나도 지구촌은 못 누벼도 국내만이라도 한 달 살아보기 프로젝트라도 펼칠까 싶기도 하다. 그게 안 되면 무작정 차를 끌고 나가 전국을 누벼 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은 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으니 한심하다. 겨우 한다는 일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 두드려 원고 한두 편 넘겨주는 일이 고작이다.
떠나기로 했다. 이대로 앉아 또 한 해를 넘기 수는 없지 않은가! 어려서부터 꿈 중의 하나가 세계 3대 폭포를 찾아가 보는 일이다. 세계 3대 폭포란 브라질과 파라과이 접경 지역에 있는 이과수 폭포.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와 미국과 캐나다 국경지대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다. 그중의 하나인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보기로 했다. 그 폭포를 찾아가면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보고 올진 모르겠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담고 올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 바람이 그곳으로 부니 가야겠다. 나도 이제는 진정한 노노족(NO老族)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