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황금 콤비'의 그 감각은 어디로…

"내 직업이 뭔 줄 알아요? 브로커예요. 위기를 팔아서 어떻게든 기회를 사는 거지."

2일 개봉한 영화 '침묵'(감독 정지우)의 주인공 '임태산'(최민식)은 정·관계에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기업 총수다. 하지만 약혼녀인 유명 가수 '유나'(이하늬)가 살해당하고, 딸 '미라'(이수경)가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태산은 약혼녀와 딸을 모두 잃을 위기에 처한다.

'침묵'은 세기말의 치정극 '해피엔드'(1999)'를 연출했던 정지우 감독과 주연 배우 최민식이 18년 만에 호흡을 맞춘 작품. 이번 영화도 '해피엔드'와 공통점이 적지 않다. 극적 반전이 중요하고, 영화 전편에서 음악이 부각되고 있으며, 여성 희생자가 등장한다는 점 등이 그렇다.

하지만 18년의 간격이 낳은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미감(美感)이다. 18년 전의 '해피엔드'는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보수적이었지만, 미적으로는 세련미를 갖춘 작품이었다. 스크린에 흥건하게 넘치는 음악부터 남달랐다. 일제 강점기 최고의 히트곡 작곡가였던 김해송(1911~ 납북)의 '청춘계급'을 사용한 헌책방 장면이나 오티스 레딩의 감미로운 흑인 음악이 흘렀던 남녀의 불륜 장면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미적 감각이라는 측면에서 결정적 약점을 드러낸다. 시사회에서 '1년이 흐르고…'라는 복고풍 자막이 뜨는 첫 장면부터 객석에서는 어색한 웃음이 터졌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방법 중 가장 낡고 도식적인 스타일을 택한 것이다.

임태산이 담당 검사에게 태연한 표정으로 "이 세상은 말이죠. 절대 혼자 못 사는 겁니다. 검찰총장을 제가 사드릴게요"라고 제안하는 장면에서도 객석에서는 헛헛한 웃음이 번졌다. 주인공의 담대한 배짱을 드러내는 장면인데도, 지나칠 정도의 진중함이 오히려 극적 몰입에는 장애가 된 것이다.

영화는 법정 장면이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법원 주차장 한복판에서 증인을 협박하고 납치하거나, 담당 검사가 재판 도중에 증언자의 신체를 압수수색하기 위해 영장을 발급받는다는 식의 무리한 설정 때문에 공감이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압수수색 영장이 법정에 배달되는 장면은 편의점 퀵서비스인지 헷갈릴 정도다.

아무리 헤어진 연인이라고는 해도 변호사와 검사가 재판장이 보는 앞에서 속닥거리는 장면에서는, 이들의 법정 모욕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허술하고 엉성한 디테일은 앞으로 나올 법정 드라마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도 좋을 듯싶다. 영화 말미에는 무척 따스하고 감동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반전이 나오기 전에 지쳐 떨어질 정도로 상영 시간 125분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