油價, 60달러 뚫고 다시 불탄다

최근 국제 유가(油價)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 30일 영국 런던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12월분 북해산 브렌트유가 2년여 만에 배럴당 60달러 선을 돌파했다. 올 6월 배럴당 42달러대까지 떨어졌던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도 최근 한 달 동안 5% 넘게 오르며 연중 최고치인 54달러 선을 회복했다. WTI·브렌트유와 함께 세계 3대 유종(油種)이자 국내 기준 유가로 삼는 두바이유도 60달러에 근접했다.

국제 유가가 오른 것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이 내년 3월까지로 약속한 원유 감산을 내년 말까지 연장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주요 산유국의 원유 감산 이행률도 9월 86%에서 지난달 92%로 높아졌다. 달러화 가치가 줄곧 약세를 보이며 달러로 표시되는 국제 유가는 더 올라갔다. 최근엔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원유 수요가 늘면서 '저유가 시대'가 곧 끝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올 상반기만 해도 미국 셰일가스 생산량 증가와 일부 산유국의 원유 증산 탓에 하락세를 면치 못했던 국제 유가가 반등하면서 관련 펀드와 ETF(상장지수펀드), ETN(상장지수채권)의 수익률이 덩달아 급반등했다. 이에 따라 고수익을 노리는 발 빠른 투자자들이 원유 관련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WTI 선물 가격이 지난 1년 반 동안 40~60달러를 오갔다는 점을 감안해 최근엔 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도 많아졌다.

◇원유 선물에 투자하는 ETN, 4개월 수익률 20%

투자자들이 가장 손쉽게 원유에 투자하는 방법은 국내외 증시에 상장된 원유 선물 ETF나 ETN에 투자하는 것이다. 주식처럼 증시에 상장돼 개인 투자자들이 HTS(홈 트레이딩 시스템)나 MTS(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를 통해 실시간으로 편하게 거래할 수 있다.

자산운용사가 만드는 원유 선물 ETF와 증권사가 발행하는 원유 선물 ETN은 모두 원유 가격 움직임에 따라 수익을 올리도록 설계돼 있다. 다만 ETF는 기초 자산이 같은 원유라도 자산 운용사에 따라 매일 1~2%씩 등락률 차이가 나는 반면 ETN은 기초 자산만 같으면 발행사가 달라도 거의 똑같은 성과를 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증시에는 원유 관련 ETN이 14종 상장돼 있다. ETN의 수익률을 올 상반기(1~6월)와 이후(7~10월)로 나눠 보면 극적인 '수익률 반전'을 확인할 수 있다.

시가총액이 3200억원이 넘는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은 올 들어 유가 하락으로 상반기 수익률이 -39.5%에 그쳤지만, 7~10월 수익률은 34.5%로 치솟았다. 유가 상승분의 2배 수익률을 내는 이 상품은 작년 초 유가가 20달러대로 떨어졌을 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이 밖에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도 수익률 상승에 힘입어 최근 3개월간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이 160억원대로 치솟았다.

레버리지가 아닌 일반 원유 ETN 상품은 상승·하락 폭이 절반 수준이다. 신한 브렌트원유 선물 ETN의 수익률은 -19.0%(1~6월)에서 26.8%(7~

10월)로 올랐고, 같은 기간 미래에셋 원유선물혼합 ETN도 -20.0%가 21.5%로 바뀌었다. 반면 원유 가격이 떨어질 때 수익을 내는 인버스 ETN은 상반기 20% 안팎 수익을 올렸지만, 하반기 들어 수익을 까먹는 중이다.

원유 선물에 투자하는 ETF 상품도 투자를 고려할 만하다. 해외 증시 거래가 익숙하지 않은 일반 투자자에겐 국내 ETF가 편하다. 순자산 1500억원 규모의 대표 ETF인 '미래에셋TIGER 원유선물ETF'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13.9%이지만, 최근 3개월 수익률은 2.8%다. 작년 한 해만 놓고 보면 수익률이 20%였다.

◇에너지 기업 투자, MLP펀드 등도 대안

유가와 향후 에너지 업황 전반을 긍정적으로 전망한다면 ETN이나 ETF 외에 에너지 기업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내외 증시에서 개별 정유 업체나 관련주(株)를 직접 담을 수 있고, 글로벌 에너지 기업에 분산 투자하는 펀드도 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ETF 중에서도 미국 원유 생산 기업에 투자하는 KB자산운용의 'KBSTAR 미국원유생산기업 ETF'가 있다. 연초 이후 수익률은 원유 선물 ETF보다도 부진하지만, 작년엔 수익률 35%로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냈다.

상반기 유가 하락으로 부진했던 MLP(마스터합자조합·Master Limited Partnership)펀드와 원유 DLS(파생결합증권)도 유가 상승에 따라 다시 각광받고 있다. MLP펀드는 미국 셰일가스와 원유 관련 송유관, 저장 시설 등 인프라 사업을 운영하는 미국 MLP에 투자하는 펀드다. 지난해 '한국투자미국MLP펀드'와 '한화에너지인프라MLP펀드'는 각각 수익률 25%와 23%를 기록했다.

DLS는 ELS(주가연계증권)처럼 유가가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연 5~8% 수준의 수익을 주는 비교적 안전한 상품이다. WTI나 브렌트유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공모형 DLS 발행액은 지난해 3981억원에 그쳤지만 올 상반기에 이미 5000억원을 넘어섰다.

◇"유가 전망 어려워… 국제 수급 살펴야"

원유 관련 투자는 쉽지 않다. 우선 국제 유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언제 어디서 터져 나올지 몰라 유가 자체를 전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일 가격이 출렁이기 때문에 매매 시점을 잡기가 쉽지 않다. 무조건 장기 투자를 고집할 수도 없다. 이에 투자자들은 OPEC의 감산·증산 움직임, 미국 셰일가스 생산량 등 유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시 경제 이벤트를 주목해야 한다.

또 원유 ETF는 원유 실물이 아닌 원유 선물에 투자하기 때문에 현물 가격 움직임과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매달 롤오버(선물 만기 연장) 비용이 수익률을 깎아먹는다. 유가가 올라도 실제 유가 상승 폭보다 실현 수익률이 낮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손해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글로벌 증시에 상장된 원유 ETF 등에 투자할 때는 환율을 고려해야 하고, 에너지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경우엔 유가 외에 기업의 사업 성과와 실적 전망도 고려해야 한다.

문성필 한국투자증권 상품전략본부장은 "원유 관련 상품은 변동성이 큰 만큼 포트폴리오 분산 수단으로 활용해 투자 자산의 10% 이내로 투자하길 권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