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을 불감(佛龕)이라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목조삼존불감은 보조국사 지눌이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불감은 모두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의 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방이 문짝처럼 달려 있다. 문을 닫으면 윗부분이 둥근 팔각기둥 모양이 되는데, 전체 높이는 13㎝이고, 문을 열었을 때 너비 17㎝가 되는 작은 크기이다.
가운데 큰 방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이 조각되어 있고, 양쪽의 작은 방에는 각각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본존불은 양어깨를 감싼 옷을 입고 있으며, 옷 주름은 2줄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어깨높이로 들었고,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왼손에는 물건을 들고 있다. 오른쪽 방에는 실천을 통해 자비를 나타낸다는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는데, 코끼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앉아 있다. 보살의 왼쪽에는 동자상이, 오른쪽에는 사자상이 서 있다. 왼쪽 방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문수보살은 사자가 새겨져 있는 대좌 위에 서 있으며, 보살의 좌우에는 동자상이 1구씩 서 있다.
이 목조삼존불감은 매우 작으면서도 세부묘사가 정확하고 정교하여 우수한 조각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세부의 장식과 얼굴 표현 등에서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듯 이국적인 면이 보이며, 불감의 양식이나 구조에서는 중국 당나라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국내에 남아 있는 불감류 가운데 매우 희귀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불감(佛龕)
감실(龕室), 또는 감(龕)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건물보다는 작은 규모의 공간을 말하는데, 벽면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조각, 부조 또는 등잔 같은 공예품을 안치하는 벽감(壁龕)과 작은 규모의 건물 모양을 본떠 만드는 감실(龕室), 그리고 공예 수준의 신불(神佛)을 봉안하여 이동하기 쉽도록 하는 공예적 감이 있는데 작은 불상을 봉안하면 불감(佛龕)이라 한다.
국보 제42호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松廣寺 木彫三尊佛龕)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은 송광사 16국사중에서 1대국사인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중국에서 가져왔다고 전하는데 아마도 먼 길 다닐 때에 호신 또는 약식예불 등에 필요하여 휴대용으로 제작한 듯하며, 둥근 모양을 반으로 잘라 본존불을 새겼고 나머지 반쪽을 다시 반으로 잘라 좌우로 열리게끔 하여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 입시보살로 새김으로써 삼존불이 되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광배를 배경으로 감긴 모양의 나발(螺髮)이 뚜렷하고 입술은 붉은색이 보이며 연꽃대좌 위에 가부좌로 앉았는데 두 어깨를 덮은 법의(法衣)가 무릎 위로 늘어져 좌대를 덮으니 이러한 형태를 상현좌(裳懸座)라고 한다. 삼국시대에 크게 유행한 모습이기 때문에 통일신라 이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법의 주름을 2겹으로 표현한 것도 특이한데 인도나 서역풍 옷주름 표현기법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오른손을 들어 무서움을 없애준다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아 옷 주름을 잡고 있는 것인지 다른 물건을 쥐고 있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석가모니 좌우로는 2명이 2줄로 시립하였는데 (보는 사람 입장에서) 뒷줄에는 좌측에는 가섭존자가 서 있으며, 오른쪽에는 아난존자가 합장을 하고 서 있다. 일부 설명에는 왼쪽 가섭존자가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공수(拱手)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섭과 아난존자 아래로는 좌우 협시보살을 세웠는데 마치 횃불을 들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연화(蓮花)를 들고 있는 것이다. 두 보살은 가는 허리에 묶은 옷 주름과 옷자락 밑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두 다리의 윤곽이 뚜렷하다.
석가모니불 아래 앞쪽으로 추가한 장엄부(莊嚴部)는 아마도 좌우 대칭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사리 모양의 초문(草紋)을 새긴 위에 보면 가운데 향로를 두고 좌우에 공양을 바치는 사람을 새겼다. 왼쪽으로는 사자가 앉아 있고 나뭇가지 위로 한 사람을 더 새겼는데 오른쪽에도 대칭으로 새겼을 사자와 나뭇가지 위 한 사람, 그리고 키 큰 나뭇가지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왼쪽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앉았는데 왼손에는 연꽃 가지를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아쉽게도 파손되어 없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목걸이와 X자 형태의 영락(瓔珞 :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으로 치장하였으며, 사자의 왼쪽에는 마부가 말고삐를 잡듯 사자를 잡은 시자(侍者)가 두 다리를 굽힌 모습인데 거의 벌거벗은 듯 보인다. 사자의 오른쪽으로는 솟아오른 연꽃좌 위에 연봉오리를 쥔 보살상이 서 있는데 보살상과 문수보살의 입술에 붉은빛이 보인다.
오른쪽 보현보살은 낯설어 보이는 코끼리를 타고 앉았는데 오른발을 구부려 왼쪽 발로 향하는 반가(半跏)의 자세를 취하였다. 이 반가의 자세를 취한 보현보살은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지 않고 중국 당(唐)에서 만들어 전했다는 일본 절집의 불상이나 당나라 불상도 등에서 보인다고 하니 보조국사가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보현보살도 왼손에는 연꽃을 든 채 오른손은 위로 들었지만, 손가락을 앞으로 구부린 모습 역시 낯설어 보인다.
보현보살 왼쪽 아래에도 문수보살 옆에서처럼 연꽃좌 위에 연봉오리를 쥔 보살상을 대칭으로 세웠는데 X자 형태의 영락(瓔珞)을 묘사했다. 코끼리 옆 시자(侍者) 역시 두 다리를 굽힌 모습으로 마부처럼 코끼리를 잡으면서도 코끼리를 타고 앉은 보현보살의 왼발 받침을 떠받드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코끼리 위 보현보살 앞에는 왼쪽 문수보살의 사자 위에는 보이지 않는 보살(?) 한 구를 새겨 태웠다.
뛰어난 조각기법과 사실감
높이가 불과 13cm, 너비는 중앙이 8cm 남짓하고 좌우는 각각 4cm 남짓한 크기에 새긴 조각 솜씨가 실로 놀라워서 부조(浮彫)가 아니라 원형의 환조(丸彫)에 가깝게 느껴진다. 삼존불과 보살, 시자 등을 하나하나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입체감이 풍부하고 세밀하다. 특히 좌우의 상단에는 각각 3인의 비천상을 새겼으며, 중앙 상단에는 천개(天蓋)에 장막이 둘러쳐져 있고 그 위에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어 또한 감탄을 자아낸다.
왼쪽 문수보살의 오른팔과 중앙의 석가모니 앞 장엄부의 오른쪽 대칭부가 없어져 아쉬쉽다. 부분적으로 조금씩 흠집이 관찰되어 아쉽지만, 이 국보 제42호 목조삼존불이 1974년에 도난당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문화재이다.
아쉬움
금년 4월에 현대식 성보박물관을 재개관한 송광사 측에서 이 목조삼존불감을 상시전시하지 않고 수장고에 보관하다가 매년 사월초파일 전후에만 짧은 기간 특별전시를 한다니 과거 분실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훌륭한 건물을 지어 놓고도 그에 걸맞은 전시가 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가장 의미 있는 문화재가 탐방객들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성보박물관 중앙에 가장 잘 보이게 전시하고 안내원이나 해설사를 배치하고 필요한 보안시설을 설치하면 될 일이다.
뿐만아니라 차제에 아침, 저녁 예불도 참석하기 위하여 송광사 종무소 측에 문의하니 예불 여부에 관계없이 입장료(3,000원)를 내고 들어오라는 답변에 아연실색이다. 종교기관에 예불하러 가겠다는데 (미리 전화로 문의하는 것도 우습거니와) 돈을 내고 들어오라는 것은 지나친 처사로 보여 답답한 마음이다. 종무소 얘기는 조계종 신도증이 있는 사람 외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것인데 조계종이 아닌 불교 신자도 있을 것이고, 현재 신자는 아니지만 관심자로 불교 예불행사에 참석하고 싶어 먼 거리 절집을 찾았는데 막무가내로 입장료를 요구하는 것은 종교기관으로서 적절한 처사는 아닌 듯하다.
자료 제공·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회(http://band.us/@4560dap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