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두뇌 1500명, 칸막이를 없앴다

지난 6일 KTX 창원중앙역에서 차로 20분가량을 달리자 창원국가산업단지 한쪽에 솟아오른 거대한 빌딩이 나타났다. 지상 20층, 지하 2층 규모의 이 빌딩은 지난달 26일 문을 연 LG전자 창원 연구개발(R&D) 센터이다. 일반 아파트 건물과 비교하면 40층 높이(110m)로, 창원시의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LG전자 가전 개발의 메카다.

창원 R&D 센터는 냉장고, 김치냉장고, 정수기, 오븐 등 LG전자 주방가전 개발을 책임진다. 외형부터 백색 가전의 상징인 냉장고 모양을 본떠 설계됐다. 밤이 되면 LED(발광 다이오드) 조명으로 W와 V 자가 건물 외벽에 새겨진다. LG전자 주방가전이 글로벌(World) 시장에서 승리(Victory)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건물 4층에 들어서자 3D 프린터실에서는 대당 10억원을 호가하는 3D(3차원) 프린터 4대가 '위잉' 하는 기계음과 함께 각종 주방가전 제품의 외형과 부품 모형을 만들고 있었다. 박수소리 연구원은 "이전에는 외부 제작업체에 제품 모형과 부품을 매번 주문 제작해야 했다"면서 "3D 프린터로 즉석에서 찍어내면서 모형 제작 시간이 30% 이상 단축됐다"고 말했다. LG전자는 현재 주방가전 외형과 부품 모형의 80%를 3D 프린터로 만들고 있다.

◇제품별 칸막이 없앤 연구소

1500억원을 투입해 2년 반 만에 완공된 창원 R&D 센터에는 LG전자 창원 공장 단지 곳곳에 흩어져 있던 연구원 1500여명이 집결했다. 연구실과 실험실 30여개가 이미 입주했고 일부 공간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LG전자 쿠킹담당 송승걸 전무는 "기존 주방가전 연구실들은 제품마다 별도의 연구실을 운영했기 때문에 정수기가 달린 냉장고나 얼음이 나오는 정수기 같은 융합 제품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도 많았다"면서 "각 분야 연구원이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도록 칸막이를 없애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14층의 글로벌 요리 연구실에서는 박소영 선임연구원을 비롯한 LG전자의 요리 전문가 5명이 전 세계 166개국에 판매되는 오븐에 탑재할 자동 요리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었다. 재료만 넣으면 오븐이 알아서 요리를 해주는 식이다. 요리 연구가인 박소영 연구원은 "각국 전통기구로 요리를 직접 만들어본 뒤 LG전자 오븐으로 맛을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서 "지금까지 200가지 이상의 자동 요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지하 1~2층에는 거대한 시제품 창고가 들어섰다. LG전자뿐 아니라 국내외 경쟁사 제품까지 냉장고만 500대, 오븐과 정수기 100여대 등 총 750대의 시제품이 보관돼 있다. 연구원들은 신제품 디자인이나 개발에 필요한 제품을 외부에서 주문할 필요없이 이 창고에서 곧바로 찾아서 활용할 수 있다. 마치 시제품 도서관 같은 곳이다. 송대현 LG전자 가전사업본부장(사장)은 "소비자들이 '와우' 하고 감탄할 정도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창원 R&D 센터의 목표"라며 "서울과 수도권에 편중돼 있는 R&D 인력의 창원 유치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공장 건설로 '세계 가전 산실' 만든다

LG전자는 R&D 센터를 둘러싸고 있는 창원 가전 공장도 6000억원을 들여 2023년까지 첨단 스마트공장으로 재건축할 계획이다. 송대현 사장은 "현재 창원 공장은 40년이 넘어 개·보수만으로는 앞으로 나올 신제품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를 결합해 인공지능이 생산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첨단 가전의 산실(産室)로 재탄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스마트 공장 건립을 통해 연간 생산량을 현재 200만대에서 300만대로 확대할 방침이다. 공장 전체에 설치된 센서를 이용해 공정의 문제점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부품 조달을 자동화하면 제품당 제조 시간을 3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송대현 사장은 "내년부터 R&D 인력을 중심으로 매년 250명씩 4년간 1000명 이상을 새로 채용할 계획"이라며 "가전제품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수한 R&D 인력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