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거나 나쁘거나] 아등바등 서글픈 삶, 따끈한 블랙코미디에 담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7호실'(감독 이용승)에 담긴 우리 사회 '을(乙)'들의 초상은 웃기고도 슬프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대부(代父) 위에 대부(貸付) 업자 등 풍자는 신랄하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은 따뜻하다.

서울 강남 압구정동 뒷골목, 허름한 '헐리웃 DVD방'은 하루 한두 팀 손님이 고작인 망해가는 가게다. 사장 '두식'(신하균)이 가게 7호실에 성상(聖像), 불상(佛像) 다 갖다 놓고 '부자 되게 해달라' 빌어 보지만 별무소용. 학비 사채에 허덕이는 알바생 '태정'(도경수)에겐 두 달 넘게 알바비도 못 줬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 봐도 삐끗하는 순간 모든 게 엉망진창. 겨우 가게가 팔릴 즈음 뜻밖의 사고가 일어나면서 이야기는 소용돌이친다. 두식이 7호실에 시체를 숨기고 자물쇠를 잠그는데, 빚 갚을 돈 벌 생각에 마약을 그 방에 숨겨놨던 태정은 최대한 빨리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한다. 닫아야 사는 사장과 열어야 사는 알바생의 몸싸움 머리싸움이 이어진다.

한정된 공간에 한정된 인물만 등장하지만 스릴러·호러 요소가 양념처럼 뿌려져 지루할 틈이 없다. 곳곳에 매복한 개그 코드, 속도감 있는 진행 덕에 100분 상영시간이 훌쩍 지난다. 이용승 감독은 정규직을 꿈꾸는 공기업 인턴 청년의 '웃픈' 현실을 그린 전작 '10분'(2013)으로 부산과 홍콩국제영화제에서 국제평론가협회상을 받았다. 그는 "전작이 너무 세서 '암 걸릴 것 같다'는 말을 들었고 나도 숨이 막혔는데, 이번 영화엔 블랙코미디의 장르적 재미와 '사람이 먼저'라는 사회적 의미를 함께 담고 싶었다"고 했다. 제작사 명필름이 '아이 캔 스피크'에 이어 연타석 흥행 홈런을 칠지도 관심거리다.

어디 하나 빠지거나 부족한 구석 없이 영화적 매무새가 매끈하다는 점이야말로 '7호실'의 미덕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린 인간 군상의 악전고투(惡戰苦鬪)를 보여주는데도 미소와 쓴웃음을 동시에 자아내는 블랙코미디의 장점이 돋보여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엑소(EXO)' 출신의 도경수는 아이돌 그룹 출신답지 않게 근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선배 신하균과 투톱(two top)을 이루고 있는데도 영화의 축이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한 호각지세를 이룬다.

하지만 최근 한국 영화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드라마에서 중국 동포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황해'(2010) 이후 '청년 경찰' '범죄 도시'에 이르기까지 최근 영화에서 중국 동포는 평온한 질서를 위협하는 야만적 존재로 묘사되어 왔다. 낯선 한국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소수자의 고민을 차분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지극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7호실'은 중국 동포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또 하나 추가한다. 성실하고 순진무구하지만 결국 희생양이 되고 마는 존재라는 이미지다. 이 영화에서 DVD방의 중국 동포 아르바이트생인 '한욱'(김동영)은 싹싹하고 예의 바른 데다 눈치도 빠르다. "제가 일한 가게는 다 잘됐슴다"는 대사는 한욱의 성실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도 영화에서 아무런 죄 없이 처벌받는 존재는 사실상 '한욱'뿐이다. 그래서 "어차피 조선족이라 관심도 없을 걸요"라는 영화의 대사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용승 감독이 전작 '10분'을 통해 정규직과 인턴 같은 사회적 고민을 심도 깊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