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 '쇼룸'으로 변신한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한복판에 '아틀리에 비비드 라이프'라는 이름을 단 매장이 눈에 띄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꽃과 갈대로 장식한 홀에 사람만 한 보라색·분홍색 인형들이 놓여 있었다. 주변에선 이 인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려는 연인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통유리로 꾸민 2층은 커피를 마시며 대화에 열중하는 여성이 많았다.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주방에선 유명 셰프들이 주최하는 요리 교실이 열린다.

'퓨전 카페'처럼 보이는 이곳은 사실 르노삼성에서 신차 '뉴QM3'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체험형 전시장'이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도 근처에 '재규어랜드로버 스튜디오'를 열고 차를 전시하면서 갤러리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뿐 아니라 식음료(F&B) 브랜드들도 가로수길에 잇따라 쇼룸(showroom·전시장)을 열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거 의류 매장이 즐비해 '패션 거리'라던 가로수길은 이젠 다양한 업종 회사들이 브랜드를 알리는 '쇼룸 거리'로 변신하고 있다. 덕분에 가로수길을 찾는 발길이 다양해지면서 "이젠 한물갔다"고 평가받던 이 거리가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단기 임대를 통한 이벤트성 매장일 뿐인데도 가로수길 명성이 더해져 홍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

◇늘어나는 가로수길 쇼룸

동원F&B는 최근 요구르트·커피 등 유제품 브랜드인 '덴마크'를 개편하면서 가로수길에 '덴마크 프레시 갤러리'라는 쇼룸을 열었다. 매장에서 제품을 시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말에는 공연 등을 열어 한 달 동안 4만5000명이 방문했다. 김일규 동원F&B 과장은 "가로수길은 여전히 유동 인구가 많을 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가로수길'을 검색어로 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홍보 효과가 있다"면서 "제품을 직접적으로 알리기보단 사진 촬영 포인트, 캐릭터 제품 등을 넣어 방문객들이 자발적으로 홍보할 수 있도록 매장을 꾸미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 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은 최근 가로수길에 300억원 규모 빌딩을 사들여 '청년 창업가'들이 실험적으로 매장을 운영해보는 상업 시설을 만들 예정이다. 신진 요리사나 디자이너를 발굴, 이들이 일정 기간 재능을 시험할 수 있는 매장으로 꾸미고, 이 중 사업성이 보이면 펀드를 통해 투자도 할 계획이다. 말하자면 이 상업 시설은 '재능'을 전시·홍보하는 쇼룸 역할을 하는 셈이다.

◇패션 거리→중국인 관광 코스→쇼룸

가로수길은 현대고등학교 맞은편 압구정로12길에서 도산대로13길로 이어지는 660여m 직선 도로 주변을 일컫는다. 주로 의류 업체가 자리를 차지, '패션 거리'로 유행을 선도하다 인기가 높아지자 관광객을 겨냥한 화장품 가게가 너무 많아져 잠시 시들해졌다. 하지만 최근 젊은 감각에 호소하는 쇼룸들이 분위기를 바꿔주면서 다시 '핫 플레이스'(유명 지역)로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명동·도산거리와 다른 가로수길만의 현대적 느낌을 제품에 입히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가로수길에 매장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2010년 3.3㎡당 83만3057원이던 가로수길 월 임대료는 중국인 관광객 등 유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2016년 3.3㎡당 116만3517원 수준까지 올랐다. 김민영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한동안 중국인 관광객이 임대료를 끌어올렸지만 가로수길에 특이하고 유행을 반영한 '쇼룸' 매장이 많이 생기면서 내국인을 상대로 한 상권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