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1일의 세월, 가슴에 묻다

"비통하고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세월호 참사 발생 1311일 만인 16일 오후 목포신항 철재부두에 미수습자 가족 6명이 취재진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동안 응원하고 지지해준 국민에게 대한 감사의 인사였다. 이들은 이날 자식·조카·동생·남편이었던 5명의 미수습자 가족의 수색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지난 4월 11일 선체 수색을 위해 세월호가 신항 부두에 올려진 이후 231일 만이다. 녹이 슬고 구멍이 뚫리고 찢긴 처참한 모습의 세월호 선체가 모로 누워 있었다. 굴착기와 지게차 등 각종 중장비는 굉음을 내며 세월호 내부에서 발견한 잔해를 정리하고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16일 가슴을 칼로 베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그해 11월 11일 정부가 실종자 수중 수색을 공식적으로 종료할 때 남은 미수습자는 9명이었다. 9명의 가족들은 참사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진도 팽목항의 컨테이너 숙소에서 세 번의 겨울을 보냈다. 일부 가족은 사고 지점에서 1.6㎞ 떨어진 동거차도에서 세월호 인양 과정을 지켜봤다.

미수습자 가족은 지난 4월 11일 목포신항에 세월호가 거치되자 200m 떨어진 컨테이너 주택에서 동고동락을 시작했다. 모든 가족이 함께 세월호 선체 수색 과정을 지켜봤다. 컨테이너 내부 TV를 통해 수색 과정을 실시간 지켜보는 일은 입술을 바짝 마르게 했다. 동물 뼈 조각이 나왔다는 소식에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마침내 9명의 미수습자 중 단원고 조은화·허다윤양, 고창석 교사, 이영숙씨 등 4명의 유해는 육상 선체 수색을 통해 수습됐다. 9월 23일 조은화·허다윤양 가족이 떠났다. 10월 13일 이영숙씨 가족이, 지난 11일 고창석 교사 가족이 잇따라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가족은 네 가족.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과 양승진 교사, 권재근·권혁규 부자 등 5명의 유해를 찾는 가족이다. 3년 7개월간 가족의 뼛조각 하나만이라도 애타게 기다린 이들은 기자회견장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회견 전부터 박영인·남현철군의 두 모친과 양승진 교사 아내 유백형씨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남현철군 부친 남경원씨가 A4 두 장 분량의 기자회견문을 읽었다. 남씨는 "2014년 4월 16일 가족을 잃었고 3년 7개월이 지난 오늘까지 가족을 찾지 못했다"며 "가족의 유해라도 찾으려고 작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목포신항에서) 7개월을 보냈으나 가족을 영원히 못 찾는다는 공포와 고통만이 점점 커졌다"고 말했다. 또 "뼛조각 하나라도 찾아 따뜻한 곳에 보내주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더 이상의 수색은 무리한 요구이자 저희를 지지하는 국민을 아프게 하는 행위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다만 해수부와 선체조사위원회의 추가 수색을 막을 뜻은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앞으로 모든 (수색과 관련한) 일은 정부와 선체조사위의 몫으로 남겨두고 떠난다"며 "2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한 점 의혹 없이 침몰 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을 꼭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함께 힘이 돼 준 국민에게 감사의 뜻도 전했다. 이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진도로 달려온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진도 군민의 헌신적인 노력은 감동이었다"며 "목숨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희생자를 찾아 준 잠수사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부와 종교 단체, 안산시와 목포시 등에도 감사를 표했다.

남경원씨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남현철 학생, 박영인 학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님, 권혁규군, 이 다섯 사람을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 주십시오." 이름 하나하나가 불릴 때마다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박영인군 모친은 통곡하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2남 중 막내인 박영인군은 발랄하고 쾌활해 부모에게 딸 같은 아들이었다. 영인군과 같은 반이었던 남현철군은 5반 고(故) 이다운군의 자작곡 '사랑하는 그대여'를 작사했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현철군은 기타 실력도 상당했다. 양승진 교사는 사고 당일 선체가 기울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학생들이 있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은 온 가족과 제주도로 이사를 하던 길에 이별을 하게 됐다. 권씨 가족은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세월호에 승선해 제주도 새집으로 이사하는 길이었다.

미수습자 가족은 18일 목포신항에서 희생자 추모식을 열고 장례 일정에 들어간다. 박영인·남현철군, 양승진 교사의 장례는 18일부터 사흘간 경기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치른다. 유해가 없어 수색 때 찾은 학생증과 운동복, 교복, 목걸이, 지갑 등 유품을 태워 유골함에 안치한다. 유골함에 담긴 유품의 재는 세월호 희생자들이 잠든 평택 서호공원으로 옮긴다. 권재근·혁규 부자 장례식도 사흘간 서울아산병원에서 연다. 유품을 태워 유골함에 담아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는 인천가족공원에 안치한다. 앞서 조은화·허다윤양, 이영숙씨, 고창석 교사의 유해는 평택 서호공원과 인천가족공원 추모관,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