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황창배, 서예전각 선보였네

철농(鐵農)과 소정(素丁)이 만났다. 철농 이기우(1921~1993)는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의 사인(私印)을 각인한 것으로 유명한 서예 전각가. 소정 황창배(1947~2001)는 '한국화의 테러리스트'로 불리며 1980~90년대 황창배 신드롬을 일으켰던 화가다.

장인과 사위 지간이며 사제 지간인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만났다. 12월 30일까지 서울 연희로 스페이스창배에서 열리는 '파격의 뿌리' 전시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황창배 조형의 내면은 장인이자 스승인 철농의 영향에서 비롯됐다"며 "자유분방하면서도 격조의 세계를 지속시킨 점이나 파격의 현대적 미의식에도 언제나 고담한 분위기를 잃지 않았던 점은 절제와 탈속에서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려는 철농의 예술세계를 그대로 이음에서 가능했다"고 평했다.

철농과 소정의 작품 3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황창배의 서예와 전각 솜씨다. '붓이 그림을 끌고 다니는구나'란 글자를 비뚤배뚤 새긴 전각이며 '연년익수(延年益壽) 여천무극(與天無極)'이라 쓴 붓글씨 아래 기도하는 자의 형상이 그려진 문인화 등 이기우의 지필묵이 사위인 황창배 작품에 어떻게 무르녹아 있는지 즐겁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오세창의 제자로 당대 걸출한 서예가였던 철농이 석고에 새긴 애국가와 대나무에 새긴 행서 전서들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크다. (02)332-1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