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여진에도 흔들림 없다, 1만명의 헌신

21일 오후 경북 포항시 흥해읍 망천리의 한 주택에서 20·30대 청년 15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청년들은 지난 15일 규모 5.4 강진으로 무너진 담벼락의 잔해를 쉬지 않고 포대에 담아 트럭으로 실어 날랐다. 깨진 연탄 더미를 치우고 넘어진 가구를 다시 세웠다. 우렁찬 구호를 외치며 작업하는 이들은 하루 전부터 지진 피해 현장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청년들은 지진 잔해와 쓰레기를 치우려고 차량과 장비도 직접 준비했다. 삽, 장갑, 방진 마스크, 방진복, 1t 트럭을 준비해 가가호호 방문하며 청소 봉사에 나섰다. 홀로 사는 윤모(82)씨의 집은 이날 청년들의 봉사로 2시간 만에 정리됐다. 윤씨는 "혼자선 도저히 정리할 엄두가 안 났는데, 가족처럼 도와준 청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진이 덮쳤던 포항에 자원봉사자들의 온정이 이어지고 있다. 지진 발생 7일째를 맞은 21일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는 9952명(포항시 집계)에 이른다. 흥해읍의 이재민 대피소에 마련된 자원봉사 부스에는 이재민을 도우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인근 경주는 물론 대구·구미·영천·칠곡·안동·김천에서 찾아왔다. 서울·부산·대전·수원에서 온 봉사자도 있다. 하루 평균 1100명이 이재민을 돕는 현장에서 활동한다. 대부분 흥해실내체육관, 흥해공고 등 12개 재난대피소와 구호 물품 보관소에서 지원 활동을 펼친다.

이날 오전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주부 김순옥(49)씨는 서울에서 내려왔다. 김씨는 "어제저녁 포항에 도착해 오늘 아침부터 재난 대피소에서 밥 차를 타고 봉사 중"이라며 "지진 피해를 본 분들께 말보다 실천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온 주부 박미선(54)씨도 "지진 피해로 고통받는 이재민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 드리고 싶다"고 했다.

구호품 기탁도 이어지고 있다. 21일까지 생수 15만병, 간이침대 8584개, 모포 5780개, 부식류 1만2083박스, 세면 세트 2만3048개, 의류 5983점 총 13만점이 포항시로 전달됐다. 일본에서도 온정이 답지했다. 일본 아이치현에 사는 이와타 메구미(岩田惠·여·28)씨는 핫팩 240개를 포항시로 보내왔다. 이와타씨는 포항시 트위터에 지진 발생 시 행동 요령과 신문지나 비닐봉지로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 등을 담은 사진 파일 64개를 올렸다.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이상섭 사무국장은 "전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포항에 밀려드는 봉사의 손길과 대조적으로 주요 기업들은 성금 모금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포항 지진 피해를 위한 모금을 진행 중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따르면 21일 오후 3시까지 총 74억원이 모였다. KT&G가 5억원을 약정 기탁했고 풍산이 이날 오전 3억원을 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는 26억원이 모였다. 이 중 15억원은 포항을 지역 연고지로 둔 포스코가 기탁했다.

이 기업들 외에는 주요 기업들이 기부 명단에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해 10월 태풍 차바 때와도 크게 다르다. 당시 부산과 울산, 제주도에 수해 피해가 이어지자 국내 10대 기업이 연이어 모금 행렬에 동참했다. 당시 삼성은 피해 발생 6일 만에 80억원을 복구 성금으로 냈다. SK와 현대차도 각각 50억원, LG도 30억원 등을 기부했다.

삼성 측은 현재 포항에 특별서비스팀을 파견해 TV, 냉장고, 에어컨 등 전자제품 수리비를 무상 지원 중이지만 현금 기부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혔다. LG그룹은 전자레인지 등 자사 가전제품과 수리 서비스를 무상 지원 중이나 "성금 계획은 아직 없다"고 했다. SK는 "내부 조율 중"이라고 답했다. 구호단체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국정 농단 사태 여파인지 올해는 기업들이 쉽게 모금 동참의 뜻을 밝히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