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불붙인 롱패딩 인기… 사려고 15시간 노숙도

"이거 사려고 15시간 노숙했어요."

2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에서 평창 올림픽 기념 롱패딩(일명 평창롱패딩)을 산 오진아(67)씨는 "이게 그렇게 따뜻하다고 해서 샀다. 죽는 날까지 오늘을 못 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롯데백화점이 잠실점과 영등포점, 평촌점, 김포공항점에서 평창 롱패딩 판매를 재개하자, 각 지점에 수천명의 인파가 몰렸다. 가장 많은 물량이 풀릴 것으로 예고된 잠실점 앞은 지난 21일 오후 7시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 22일 오전 6시에는 1000명이 넘었다. 롯데백화점은 24일 부산 본점과 광복점, 대구점 등에서 남은 물량을 판매한다.

◇비수기 11월 매출 올려준 롱패딩

롱패딩이 겨울 유통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11월은 비수기. 그러나 올해는 롯데백화점의 경우 지난 16~20일 기준으로 롱패딩 등 방한 의류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70%까지 치솟으면서 전체 매출도 14.1% 증가했다. 롯데백화점은 작년의 3배 이상가 넘는 800억원어치의 롱패딩을 준비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매출도 각각 12.7%, 13.4%씩 늘었다.

패딩은 푹신하게 만들거나 형체를 잡기 위해 안에 대는 솜, 털 등의 충전재를 뜻하는 말. 국내에서는 패딩 재킷의 줄임말로 주로 쓰인다.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롱패딩은 흔히 '벤치파카'라고 부르는 옷이다. 운동선수가 쉬는 시간에 벤치에 앉아 대기할 때 땀이 마르면서 급격히 추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입던 옷이다. '경량형·롱다운'으로 가볍고 따뜻하며 활동성이 좋지만, 목 부분에 털 등의 장식이 없고, 허리선 등이 없어 패션 아이템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때 너무 비싸다는 비난을 받았던 노스페이스·캐나다구스 등의 패딩은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미들형·헤비다운', 지난해까지 유행한 몽클레어·노비스의 털 장식이 들어간 고가 롱패딩은 '야상형·롱다운'으로 분류된다.

유통업계에서는 '벤치파카'가 갑자기 유행하게 된 이유로 아이돌과 이른 추위를 꼽는다.

10월 중순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자, 얇은 무대복을 입는 아이돌들이 벤치파카를 입고 공연을 기다리거나, 출퇴근하는 모습들이 기사나 인스타그램 등으로 노출됐다는 것이다. 이를 본 중·고등학생들이 교복 위에 벤치파카를 입고 등·하교 하면서 유행이 번지기 시작했다. 일반 학교의 경우 난방 상태가 좋지 않고, 교복 위에 입을 옷도 마땅치 않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고 한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갑자기 추워진 지난 10월 방송 때부터 벤치파카가 팔리기 시작해 22일 현재 7만개, 주문 금액은 100억원을 돌파했다"고 말했다. CJ오쇼핑은 아이돌그룹인 '슈퍼주니어'를 출연시켜 자체 브랜드인 '씨이앤태용'의 '슈퍼롱다운'을 판매하기도 했다.

최근 패션 트렌드가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를 중시한다는 점도 작용했다. 일부 브랜드의 경우엔 30만원이 넘지만, 젊은 층에 인기 있는 블랙야크·네파·밀레 등은 20만원 안팎이다.

◇아동복·골프복도 롱패딩 출시

최근 한 달간 롱패딩을 새로 출시한 업체는 수십 곳에 달하고,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 외에도 일반 패션 브랜드, 스파오 등 제조유통 일괄형(SPA) 브랜드, 까스텔바쟉 등 골프 브랜드, 톰키드 등 아동복 브랜드 등 대다수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셔츠나 바지처럼 여러 벌을 사지 않는 패딩의 특성상 재고가 쏟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내년 비수기에는 최대 80~90% 할인된 가격에 나올 것이라는 것이다. 지난 겨울용으로 나온 '헤비다운' 제품들은 현재 80~9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면 인기가 식으면서 결국 판매율이 떨어지고, 재고를 저렴하게 처리해야 해 그 부담이 업체들에 돌아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유행이 과열되면 이듬해에는 학생들이 안 입으려고 해 과소비·낭비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때 유행했던 노스페이스 패딩은 지금은 부모들이 대신 입고 다니면서 '학부모 교복'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