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노동 인사, 고용부 정책자문위 꿰찼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5일 '정책자문위원회'를 만들어 1차 회의를 열었다. 고용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 '고용부의 중요 정책 현안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장·단기 발전 계획 등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전문가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했다"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공무원이나 노사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 의견도 반영하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고용부는 1차 회의에서 총괄위원회의 위원 16명을 위촉하고 명단을 공개했다. 본지 확인 결과 위원 16명 상당수는 친(親)노동계 성향이었다. 교수 출신 위원 8명에 대해 학계에선 "중립 성향도 있지만 일부는 친노동계 성향"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위원 8명은 연구원이나 노동계, 정치권 출신인데 친노동계 성향이 두드러졌다. 8명 중 5명이 민노총이나 한국노총 출신이었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국회의원도 겸직하고 있는데, 김 장관의 조태상 보좌관도 위원에 포함됐다. 조 보좌관은 민노총 산업안전부장 출신이다. 경제계에선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위원회를 꾸려놓고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고 할 생각 아닌지 의심이 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각종 협의체 만들어 노동계만 만나는 정부

정책위엔 노동계만 들어가고 경제계는 배제된 모양새다. 경제계는 정부 협의체에서도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와 고용부는 각종 협의체를 만들어 노동계와 물밑 접촉을 하고 있다.

일자리위는 사회적 경제 전문위원회, 민간 일자리 전문위원회 건설분과 등에서 한국노총·민노총 실무자와 이미 여러 차례 만나 각종 현안을 협의하고 있다. 정부의 일자리 5년 로드맵에서 밝힌 노동기본권 보장, 공공 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사회적 기업의 근로조건 개선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협의하고 있다. 고용부도 택배 기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 고용 노동자 권리 보장제도 개선 노정협의회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이런 협의회들엔 한국노총 정광호 사무처장, 민노총 이창근 정책실장 등을 비롯해 양대 노총 인사가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부는 부당 노동 행위 의혹이 제기된 KPX케미칼·한국석유공사 등에 대해서도 '분쟁 사업장 해결을 위한 노정협의회'를 만들어 노동계와 협의하고 있다.

일자리위원회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박병원 경총 회장이 위원으로 들어가 있다. 그러나 대한상의나 경총은 이런 세부 협의회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경총은 지난 13일 일자리위 주최로 열린 '전국 일자리위원회 워크숍'에 초청장도 못 받았다.

재계에선는 "각종 노동 현안에서 사용자인 기업들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는데, 정부가 노동계하고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고용부는 이에 대해 "노사 양쪽을 함께 만나면 싸움밖에 안 된다"며 "일단 노동계를 먼저 만나 뭐가 문제인지를 들어보고 사용자인 기업과도 추후 만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6개월 만에 입 연 김영배 경총 부회장

이런 상황에서 김영배 경총 상근 부회장이 6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김 부회장은 23일 오전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 포럼’에서 인사말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비합리적인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개선하지 않은 채 내년을 맞게 되면 전 산업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여 대단히 염려스럽다”며 “저임금 근로자의 최저 생계 보장을 위한 최저임금제로 상여금 비중이 높은 대기업 고임금 근로자가 더 큰 혜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산입 범위 문제가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 5월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을 비판했다가 청와대·여당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었는데, 이날 6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 부회장의 이날 발언이 현 정부 들어 이어지고 있는 친노동 정책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고용부는 최근 고용보험기금 정책을 정하는 고용보험위원회에서 사용자 위원인 경총을 빼버렸다. 공익 위원 4명도 전부 교체했는데, 대부분이 노동 유연화 등 현 정부에서 불편해하는 의견을 말하던 전문가들이다.

재계 관계자는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뜻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표현은 지금까지 주로 노사 관계가 사용자에게 유리하단 뜻으로 쓰였다”며 “이젠 반대로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노사 관계를 뜻하는 말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