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사실 조지 버나드 쇼의 이 묘비명은 “오래 살다 보면 죽을 줄 알았지” 정도로 옮기는 게 원문에 더 가깝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그는 결코 우물쭈물하다 간 사람이 아니다.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로서 노벨상과 오스카상 둘 다를 거머쥔 유일한 작가였다. 탁월한 식견과 재치 있는 언변으로 영국 노동당을 있게 한 정치사상가요, 인기비평가, 명연설가, 런던정경대 공동설립자이기도 했다. 더구나 94세에 세상을 떴으니 “오래 살다 보면…”이 더 맞지 싶다.
3년째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관리인의 느낌은 무얼까 물어봤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지 하는 마음이 부쩍 들어서 매주 찾아뵙는다”는 대답이었다. 좋은 일일수록 진작 알고 실천하며 살면 좋으련만, 지나서야 깨닫는 건 나만의 어리석음일까.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두어 선배들이 그래서 나는 부럽다. 어떤 분은 “일흔이 넘으니까 친구들끼리 모이면 자기 장례에 대해 주저 없이 얘기 나눈다”며 당신의 장례식에서는 장송곡 대신 람바다곡이 흘러나오기를 원한다. 아예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고 싶다는 분도 있다.
물처럼 바람처럼
일전에 독서모임 후 몇몇과 ‘사막의 여왕’이란 영화를 감상했다. 노트북으로 봤던 영화였지만, 주연 여배우 니콜 키드먼의 강렬한 매력과 와이드 스크린에서 펼쳐진 황홀한 사막은 다시 봐도 좋았다. 영화에서 그녀는 연인과 오래된 돌에 옛 문자로 파여진 시 한 구절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읽는다. “…마침 거둔 것은 다음 한 마디. 나, 물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노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다 했더니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와 끝 부분이 흡사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을 물과 바람에 견줘보는 건 비슷한가 보다. 니콜 키드먼이 읽은 시 전체가 궁금해 찾아봤다. 이슬람의 멋진 시,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였다.
세속의 영화 위해 한숨짓는 이, 예언자의 천국 바라 한숨짓는 이,
귀한 것은 현금이니 외상약속 사양하세 먼 곳의 북소리에 귀 기울여 무엇하리.
젊은 날 성현들을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높은 말씀 들어봤건만
언제나 같은 문을 출입했을 뿐 나 자신 깨우친 것 하나 없었네.
성현들과 더불어 지혜를 씨 뿌리고 내 손수 공들여 가꾸어 보았지만
마침 거둔 것은 다음 한 마디 나, 물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노라.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승화원의 수목을 건들며 마지막 대목을 자꾸 흔들었다. 아직 남은 잎사귀들과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눈 부신 춤을 췄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란 노래 제목을 11월로 바꿔도 좋을 날이었다. 노래처럼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같은 네가 있지도 않고, 부유함도, 조그만 권력조차 없을지라도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지 못할 게 뭐겠는가. 종국에는 그렇게 작은 곳에서 흙과 섞여 사라질 인생인데. ‘11월의 어느 멋진 날에’ 머리와 가슴 가득 바람을 느끼며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