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바보', 야구 대통령 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플라이볼을 잡으면서 야구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미국 프린스턴대 유학 시절에도 야구에 미쳐 박사 학위를 1년 늦게 받았다. 대학 시절 두산그룹 장학금을 받은 게 인연이 돼, 고향은 충남 공주이지만 지금까지도 두산의 광(狂)팬을 자처한다.

평소에 스스럼없이 자신을 '야구 바보'라고 칭했던 정운찬(70) 전(前) 국무총리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한국 프로야구를 이끌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를 맡는다. 정 전 총리는 구본능 현 총재와 프로야구 9개 구단 대표(삼성은 총재에게 의결권 위임)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29일 이사회에서 임기 3년의 KBO 제22대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됐다. 각 구단의 구단주로 이뤄진 총회의 서면 결의와 이 결과를 문화체육관광부에 보고하는 과정이 남아 있지만,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정 전 총리는 컬럼비아대 조교수, 서울대 교수와 총장,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장 등 인생 이력서에 학자와 정치인으로 다양한 경력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는 틈만 나면 "내 삶은 야구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야구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말하는 '못 말리는 야구광'이다.

그는 2013년 출간한 책 '야구예찬'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얼떨결에 뛴 동네 야구 경기에서 플라이볼을 2개나 잡으며 야구에 푹 빠졌고, 이후 야구를 하는 곳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고 적었다. 정 전 총리는 "(야구 때문에) 박사 학위는 1년 늦게 땄지만, 그 야구 얘기를 풀어낸 덕분에 컬럼비아대학 교수 채용 면접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78년 서울대 부임 후에도 사회과학대 야구반 지도교수로 활동하는 등 야구에 애정을 쏟았다. 2002년 7월 서울대 총장에 취임한 다음 날에도 잠실야구장을 찾아 두산 경기를 지켜봤다고 한다.

 

정 전 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동창회 장학금을 받았는데, 당시 서울대 상대 동창회장이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회장이었고, 프로야구 원년 때 지금의 두산(당시 OB)은 정 전 총리의 고향 충청도를 연고로 하고 있었다. 그는 2016년엔 두산에서 활약한 김현수의 주례를 맡기도 했다.

2004년 9월 순수 아마추어로 이뤄진 서울대 야구부가 국내 대회에서 창단 27년 만에 첫 승리를 거뒀을 때, 총장이었던 그는 곧바로 야구부에 야간 조명 시설과 그물 타격 연습장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정 전 총리는 야구광을 자처하며 50년 넘게 쌓은 야구 지식을 바탕으로 2008년엔 라디오 방송 프로야구 개막전 특별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은 일도 있다. 자신의 야구 사랑을 담은 책뿐 아니라 야구 분석 칼럼도 썼다. 2012년 6월엔 캐나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홈 구장 로저스센터에서 시구를 하면서 자신의 '버킷 리스트' 하나를 완성했다.

29일 오후 일본 도쿄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던 중 KBO 총재 추대 소식을 들었다는 정 전 총리는 "야구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며 "좀 시간을 갖고 많은 얘기를 듣고 난 다음에 생각을 정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