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시작하면 스마트폰부터 꺼요

배우 양세종(25)의 연습실은 현관문 열고 들어가면 집 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오피스텔 방이다. '골방'이라고 이름 붙인 이 방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다. 전신 거울과 향초, 침대 정도만 갖춰놓고, 스마트폰 전원은 꺼놓는다. "작품 들어가면 하루 스케줄이 단순해져요. 잠자고, 대본 읽고, 연기하고. 촬영 직전까지 대본만 재독(再讀)해요."

이 '골방의 연기자'를 29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는 18일 종영한 '사랑의 온도'(SBS)에서 이현수(서현진)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프렌치 셰프 온정선 역을 맡았다. 막판까지 이현수를 사이에 두고 박정우(김재욱)와 연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이끌었다. 다정다감한 성격에 요리까지 잘해 '국민 남친'이라 불리며 20~30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었다.

그는 데뷔 2년차 신인이다. 지난해 '낭만닥터 김사부'(SBS)에서 병원장 아들 도인범 역으로 출연해 까칠한 의사 연기를 선보였고, '사임당 빛의 일기'(SBS)에서 이겸(송승헌)의 아역으로 등장하며 이름을 알렸다. 첫 주연을 맡은 '듀얼'(tvN)에선 선과 악으로 분리된 복제 인간 이성준과 이성훈을 1인 2역으로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사랑의 온도'는 그의 첫 로맨스물이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 체대 입시를 준비하던 태권도 선수였다. 주중에는 태권도장, 주말에는 만화방에서 살았다. 만화책을 워낙 좋아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2년간 부모님께 허락을 맡고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인생이 뒤바뀐 건 학교에서 단체 관람한 대학로 연극 '스노우 드롭'을 본 뒤다. 당시 18세였던 그는 도복을 벗고 연기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고3 때 치른 연극영화과 실기시험은 최종 관문에서 줄줄이 낙방했어요. 마지막 한예종 시험에서는 한 교수님이 '넌 마음가짐이 덜 됐다. 나가라'고 하셨죠. 그날부터 '한예종 들어가서 꼭 저 교수님께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재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는 이듬해 입시에서 한예종 연극원 연기과에 합격한다. 면접관은 1년 전과 똑같았고, 처음 받은 질문은 "올해는 준비됐느냐"였다.

드라마에서 새로운 배역을 맡을 때마다 먼저 하는 일은 캐릭터와 어울리는 향(香)을 찾는 것. 대본을 읽고 머릿속으로 대강의 이미지를 그려본 후 향수 가게로 달려간다. "사람의 성격이나 속성을 판단하는 여러 단서 중에서 가장 강력한 건 '향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배역이 바뀌면 향수를 바꾸고, 드라마가 끝나면 그 향수도 끊어요." '사랑의 온도'에선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제품을 뿌렸다. "잔향이 온정선의 부드러운 성격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단숨에 뜨거워진 신예이지만, 그는 "대본을 열심히 읽었을 뿐"이라고 했다. "연기는 대본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작업이잖아요. 모든 답은 이미 대본에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다음 작품도 '골방'에서 수십, 수백 번 대본을 읽을 거예요. 물론, 스마트폰은 꺼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