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엔 5자매가 있다. 결혼할 때, 아내가 처음 소개한 가족이 바로 3번째 언니와 형부다. 당연지사, 윗동서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10여 년 전 충남 아산에 있는 도고저수지 상수원지역 화천리에 배밭을 장만하고, 이 배밭이 일 년에 몇 번씩 주말농장 삼아 노니는 곳이 되었다.
배밭걷이 끝낸 늦가을, 배밭 정리를 거들다가 저녁 무렵이면, 늘 그랬듯 간이 화덕에 배나무가지를 땐다. 불 지피는 솜씨도 늘었는지, 참 잘 탄다. 아니, 바싹 마르니 불이 셀 수밖에. 잔가지 숯불이 만들어지면, 이 불로 고기며 생선구이를 해 먹는다. 평소 술·담배며 잡기를 멀리하는데, 이때 곁들이는 소주나 막걸리는 평소 배를 마시게 한다. 그래도 다음 날 거뜬한 것은 역시 산속이 감싸주었기 때문이리라.
아침 일찍, 윗동서가 고드름이 얼었다며 보여주었다. 후다닥! 늦가을에 고드름이라니! 가까이 다가가 만지다 눈을 대고도 본다. ‘하, 참 맑다, 하하.’ 세상도 더 맑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나이를 잊는다. 참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가까이 보고 만져본 것이 몇 년 아니 몇십 년 만인가! 분명, 나에겐 우주에서 날아온 돌이었다. 내 모든 시간을 바라보며 날아온 얼음돌.
고드름 가까이 입대고 새 공기를 들이마시다가 고드름 빨아먹던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다른 고드름으로 칼싸움도 멋지게 하다가, 또 고드름 오래 잡기 놀이를 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어보는데. 아, 그랬다. 고드름을 따다 보면, 작은 키 때문에 처마 가까이서 팔짝팔짝 거리도 했다. 이때 넘어지는 일은 왜 그리 즐거웠던지.
‘아, 그래, 예나 지금이나 같은 하늘이지?’ 하며 고개 들어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재채기가 났다. 콧물이 나며 눈물도 찔끔거린다. 아이처럼 손등으로 쓱 훔치며 보는 하늘. 하필 이때, 하늘 꼭대기에 줄줄이 매달리는 어릴 때 그 고드름이라니, 화천리 배밭 고드름과 꼭 같이 생겼다니, 참 신기할 뿐이다. 내 고드름인가 하여 손을 뻗어본다.
나도 이제 나이로 보면, 어언 가을인 듯하다. 참 세월 빠르다. 어엿한 가을 즈음의 나이라! 괜찮을까? 하늘 꼭대기에 달린 저 고드름에 매달려 세상을 멋지게 보는 일이. 그냥 눈 꼭 감고 펄쩍 뛴 뒤 꼭 매달린다. 매달려 보는 세상, 참 아름답다. 내 이름을 그 위에 올려다 놓는 가을 아침.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이냐!
늦가을 아침, 아무리 오래되어도 변하지 않는 고드름을 보게 해준 동서가 새삼 고맙다. 아마, 화천리 배밭에 오늘 사람들은 모두 몸도 마음도 참 건강할 거다. 내겐 화천리 배밭 고드름을 만진 때가 있었다! 겨울이 오고 또 와도 이보다 아름다운 추억이 또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