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서점가, 역사소설의 귀환

겨울밤을 맞아 호흡이 긴 대형 역사소설들이 잇달아 나왔다.

송은일의 '반야'(문이당·전 10권), 김종광의 '조선통신사'(전 2권·다산책방), 김홍정의 '금강'(전 6권·솔출판사)이 200자 원고지 800장 이하의 경장편이 유행하는 문단에 모처럼 묵직한 역사소설의 귀환을 알리고 있다. 송은일의 '반야'는 2007년 두 권으로 낸 소설을 10년 동안 200자 원고지 1만5000장 분량으로 확대한 것.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무녀 '반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면서 현실의 지배 세력과 이상(理想)을 추구한 저항 세력의 충돌을 그려냈다.

역사를 다루되 작가의 신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것이 여느 역사소설과는 다르다. 단군신화에 뿌리를 둔 무속 신화를 바탕으로 사도세자의 비극을 낳은 정사(正史)를 초현실적 능력의 여성 '반야'의 드라마로 재구성했다. 최하층 집단에 속한 무녀가 민중의 소망을 대변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역사의 굿판이기도 하다. 민중과 권력을 각각 대변하는 상상의 비밀 조직을 대립시키고 그 사이에 왕실 권력을 배치해 갈등 구조를 짠 것도 남다르다. 신화 시대 이후 민중 속에서 전승된 비밀 결사 '사신계(四神界)가 원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권력의 배후 세력으로 변신한 '만단사(萬旦嗣)와 끊임없이 충돌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역사를 상상의 비밀 집단으로 재구성하는 상상력은 김홍정의 소설 '금강'에서도 발휘된다. 중종반정에서부터 임진왜란까지 다룬 이 소설은 '이몽학의 난'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개혁적 지식인과 객주(客主)를 비롯한 민중으로 구성된 상상의 비밀 결사 '동계(同契)'를 역사의 주역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미금, 부용, 수련이라는 여성들이 비밀 결사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도 기존 역사소설과 구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금강'은 지난해 3권으로 나왔지만 최근 작가가 대폭 수정 보완해 6권짜리 개정판을 낸 것. 작가가 계간지 '문학의 오늘'에 연재 중인 후속편까지 모아 내년 상반기에 10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김종광의 '조선통신사'는 계미통신사(1763~64)의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면서 재구성한 소설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당시 통신사 일행이 500명이나 됐다는 기록에서 촉발됐다. 저마다 문장에 능하거나, 의술에 밝거나, 무예가 뛰어나거나, 통역에 능통하거나, 바둑의 고수이거나, 목공예 솜씨가 출중하거나 심지어 바느질을 잘한다는 기록까지 있지만 그 개개인의 초상은 전하지 않는다. 글을 지을 줄 아는 양반은 기록을 남겼지만 까막눈이었던 민초(民草)의 이야기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작가는 그 숱한 인물들이 300일 동안 지내며 겪었을 상황을 상상력으로 재현했다. 입심 좋기로 이름이 난 작가의 이야기 솜씨 덕분에 활달하게 읽히는 역사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