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핵을 공동 소유? 아무리 영화라지만…

"쿠데타라고! 북한 어디로 피난을 간단 말이야? 여기서 남한까지 차로 20분도 안 걸려. 우선 남한으로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국 외교부에 긴급 요청하라고."

북한 최고 지도자와 주(駐)북한 중국 대사 등 최고위급 인사들이 개성 공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난다. '위원장'으로 불리는 북 지도자는 의식 불명의 위독한 상태에 빠지고, 중국 대사는 '위원장'을 구하려는 행렬과 함께 한국으로 긴급 대피한다. 북한 방송은 주한 미군의 선제공격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지만, 실은 북한 군부 강경파의 쿠데타 시도다. 14일 개봉하는 영화 '강철비'(감독 양우석)는 이처럼 북한 군부 쿠데타라는 도발적인 가정에서 출발한다.

휴전선을 넘나들면서 벌어지는 첩보 액션물인 이 영화는 '쉬리'(1999)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연장선에 있다. '쉬리'에 남북을 상징하는 주인공이었던 배우 한석규와 최민식, '공동경비구역 JSA'에 이병헌과 송강호가 있었다면, '강철비'에는 청와대 외교 안보 수석 역의 곽도원과 북 최정예 요원을 맡은 정우성이 있다. 이들이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에서 한반도를 지켜내기 위해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남자 배우 두 명이 단짝을 이루는 '버디 무디(buddy movie)'와도 닮았다. 그래서 둘의 극중 이름도 '곽철우'(곽도원)와 '엄철우'(정우성)로 같다. 북의 요원 엄철우가 미덥지 못해 식당에서도 수갑을 채운 채 비빔국수를 먹던 곽철우는 불편하게 젓가락질을 하는 상대의 모습을 보고 슬그머니 수갑을 풀어준다.

곽도원의 능구렁이 같은 연기와 정우성의 무뚝뚝하지만 헌신적인 모습은 영화의 한 축을 이룬다. 거기에 대북 강경 노선을 주창하는 한국 현직 대통령(김의성)과 '포용 정책'을 내세우는 차기 대통령 당선인(이경영)도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처럼 남북의 강온파가 4중으로 뒤얽혀 있는 영화는 단선적 선악 구도보다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구조에 가깝다. 이 때문에 영화 초반부에 적응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터미네이터' 같은 추격전을 '쉬리' 같은 첩보물에 녹여 넣거나, '본 시리즈' 같은 외국 스파이 영화의 무대를 한국으로 옮긴 듯한 장르적 재미도 있다.

하지만 군사적 대결로 치닫는 후반부로 향할수록 개연성을 무시하고 만화적 상상력으로 건너뛰는 건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 북의 선전포고에 미국이 한국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 B52 폭격기에 핵미사일을 장착하고 출격, 평양·원산 등을 향해 선제(先制) 핵 공격을 감행한다는 후반부가 대표적이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현실에서 언급되고 있는 미국의 '선제공격론'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북의 군사 시설을 재래식 무기로 파괴한다는 것"이라면서 "미국이 북한에 먼저 핵 공격을 한다는 건, 현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공상(空想)"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또 수술을 마친 북한 최고 지도자를 태운 응급차를 북으로 후송한 뒤, 한국이 일종의 대가로 북핵(北核) 절반을 넘겨받는 장면을 보여준다. 자칫 남북이 북핵을 '공동 자산'처럼 활용할 수 있다거나, 북한 측 선전처럼 핵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해결할 수 있다고 잘못 해석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현재 북핵 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한국 영화들이 군사·안보 분야를 다루면서도 사실 검증이나 전문가 자문 없이 상상과 허구를 뒤섞어 제작하는 풍토는 일반 관객을 오도(誤導)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