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로 지옥 표류기 그린 '신과 함께'… 흑백 이분법 벗어난 정치극 '1987'

20일 개봉작 '신과 함께―죄와 벌'
'용서와 구원' 담은 400억 大作

"1593년 논개 이후 424년 만에 저승 일곱 재판을 무사 통과할 확률이 가장 높다는 정의로운 망자(亡者), 귀인(貴人) 김자홍이오~!"

화재 사고 현장에서 아이를 구하고 죽은 소방관 '자홍'(차태현). 그를 데리고 저승 입구로 향하는 저승차사 '덕춘'(김향기)은 잔뜩 들떠 이렇게 외친다. 죽은 자들은 사후(死後) 49일 안에 살인·나태·거짓·불의·배신·폭력·천륜 등 7개 지옥의 심판을 통과해야 환생할 수 있다는 게 저승 법. 그런데 차사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이 함께 귀인이라 치켜세워도 자홍의 표정은 어둡다. 이승의 어머니에게 아직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어서다. 게다가 의로운 망자라 일사천리일 줄 알았는데, 재판마저 여의치 않다. 미처 몰랐던 업보가 속속 밝혀지고, 설상가상 이승에서 생겨난 원귀(寃鬼) 때문에 지옥 시공간이 엉망진창이 된다.

20일 개봉하는 '신과함께-죄와 벌'(감독 김용화·이하 '신과함께')은 우리 영화에 낯설었던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대규모 컴퓨터 그래픽을 투입해야 하는 저승 배경의 판타지 영화. 전·후편 합쳐 제작비 400억원이 넘는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던 컴퓨터 그래픽 품질은 일단 합격점. 붉게 빛나는 검을 휘두르며 지옥의 괴물들과 맞서고, 수퍼 영웅처럼 날아다니며 원귀와 치고받는 저승차사 액션이 강력하다. 살인 저지른 죄인들이 심판받는 불구덩이, 무위도식과 태만으로 인생을 허비한 자들이 벌 받는 나태지옥, 나무에 가득한 칼날에 수없이 찔리는 거짓말쟁이 처벌용 칼의 숲…. 악몽 같은 저승 풍경이 이어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강점은 강력한 드라마.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를 만든 김용화 감독의 장기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들의 효심에 관한 이야기를, 누구나 겪는 일상 감정과 버무려 '용서와 구원'이라는 해피엔딩을 향해 솜씨 좋게 끌고 간다. 주호민 작가의 원작 웹툰 팬에겐 평범한 회사원이던 '자홍'이 영화에서 소방관이 되는 등 변화가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139분 상영 시간 동안 감정을 쥐락펴락해야 하는 영화의 특성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 저승차사가 "아무리 고통스러운 기억도 저승에선 다 예쁜 추억이 돼 있다"고 말할 때, '염라'(이정재)가 "살아서 못한 반성과 용서를 죽어서 하겠다는 거냐"고 물을 때, 대사는 관객 가슴에 콕콕 파고든다.

김용화 감독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미소 지으며 또르륵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우리 영화의 겨울 관객은 '7번 방의 선물'(1281만명·2013), '국제시장'(1426만명·2014), '히말라야'(776만명·2015) 등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따뜻한 영화에 유독 후했다. 상영시간 139분, 12세 이상 관람가.

6월 항쟁 다룬 '1987' 27일 개봉
惡人도 정당성 부여, 생동감 살려

"사냥개끼리 싸우다가 사냥감을 놓치면 주인이 가만히 있겠어?"

"내가 족보 없는 똥개라.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게 똥개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1987년 1월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 '박종철'(여진구)군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 조사를 받던 도중 숨진다. 경찰은 심장마비로 인한 쇼크사라고 서둘러 발표했지만, 실은 물고문으로 인한 치사(致死) 사건이다. 대공수사처의 '박 처장'(김윤석)은 서울지검 공안부장인 '최 검사'(하정우)에게 화장(火葬) 동의서에 결재해달라고 요청한다. '사냥개'의 비유를 들면서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최 검사는 넉살 좋게 자신을 '똥개'라고 비유하면서 시신 부검 절차를 정식으로 밟겠다고 배짱을 부린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민주 항쟁을 정면으로 다뤘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길 경우, 관전 포인트는 '어떻게 그렸느냐'가 된다. 영화는 초반부터 '들고 찍기'(hand-held) 기법을 활용해 극적 사실감과 현장감을 불어넣는다.

또 대공분실 등 권력 기관을 화면에 비출 때면 등장인물을 비스듬하게 보여준다. 사선(斜線) 구도를 통한 불안감의 증폭이다. 1972년 북아일랜드 유혈 시위를 다뤘던 '블러디 선데이'(감독 폴 그린그래스)처럼 시대극을 화려한 뮤직비디오처럼 연출한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장점을 버무린 연출 방식 덕분에 등장인물들이 쏟아지는 초반부에서 긴장감을 쉽게 잃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에는 검경(檢警) 같은 수사 기관은 물론 부검 의사와 취재진, 민주화 운동 세력과 유가족까지 수십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이 한꺼번에 나온다. 선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하기 쉬운 구도이지만, 영화는 악인을 묘사할 때조차 정당성과 신념을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그런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영화의 등장인물은 직분(職分)에 충실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건에 직접 연루됐던 일부 수사 담당자 외에는 재야 인사 '김정남'(설경구)과 해직 기자 '이부영'(김의성)까지 대부분 실명(實名)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영화에서는 경찰이 거리에서 불심 검문을 했던 30년 전 풍경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출발한 영화는 1987년 4월 13일의 '호헌(護憲) 조치'를 거쳐 6월 항쟁으로 끝난다. 눈 내리는 1월부터 장대비가 쏟아지는 봄철을 지나 찬연하게 빛나는 6월까지 계절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분노에 영합하거나 흑백 논리로 치닫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 드라마나 시대극의 모범 사례를 만난 것 같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