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리, 크리스마스"

연말 시즌이지만, 최근 공연계엔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콘서트나 뮤지컬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싸이·이승철·박정현 등이 자신의 이름만 내걸고 연말 공연을 한다. 인터파크 관계자에 따르면 12월 예매 순위 10위권 내에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공연은 없다. 14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 수백개 매장 중 성탄 장식으로 꾸민 매장은 20여곳뿐이었다. 캐럴 대신 방탄소년단, 싸이 등 케이팝 가수들의 곡이 거리를 채웠다.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경기(景氣)나 대형 사건 등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를 떠들썩하게 보내는 문화가 퇴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요 거리의 가로수에 달던 조명 장식이 사라졌다. 서울시는 2010년까지 연말마다 세종대로 등의 가로수에 색색의 작은 조명들을 감아 장식했다. 그러나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2011년부터 중단했다. 크리스마스 캐럴도 수난을 겪었다. 2015년 12월 "백화점 등에서 스트리밍(실시간 감상) 서비스로 음악을 재생할 때 저작권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소규모 매장에는 해당되지 않는데도 "저작권료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소문에 캐럴 틀기를 꺼리는 점포 주인들이 생겨났다. 관련 상품의 매출도 점점 줄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12월 크리스마스용품 판매량은 2016년에 전년 동월 대비 19%, 올해(12일 기준)는 10% 각각 감소했다.

'크리스마스 실종' 배경에 '이벤트에 대한 피로감'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젊은이들은 '핼러윈' 같은 새로운 이벤트에 더 열광한다. 크리스마스보다 긴 명절 연휴나 휴가 때 가족이나 연인 간에 특별한 이벤트를 하는 걸 더 선호한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엔 기념일이 많지 않아 각종 행사가 집중되는 연말에 관심이 쏠렸지만 이젠 시간과 금전이 연말에 집중되지 않는다"고 했다. 직장인 김형관(47)씨는 "각종 '데이'들이 너무 많아, 이런 날을 모두 챙기기 어렵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특수'가 예전 같지 않다. 본지가 서울시내 5성급 이상 호텔 17곳에 24~25일 숙박 가능 여부를 문의했더니, 네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방이 남아있었다. 한 5성급 호텔 관계자는 "예년에는 크리스마스 20일 전이면 예약이 마감되곤 했는데, 올해는 작년에 비해 속도가 느리다. 가장 저렴한 방도 남아있다"고 했다.

외식업·숙박업계의 지나친 마케팅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10만원대의 코스 요리만 주문할 수 있도록 메뉴를 바꾸는 식당, 평소 금액의 2배를 요구하는 호텔이 있다. 직장인 김소은(32)씨는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괜히 손해보는 것 같고, 크리스마스라는 명절 자체가 구세대의 문화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종교색' 논란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2000년대 들어 미국 등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드러나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대신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라는 인사를 건네자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캠페인이 벌어졌다. 국내에서도 서울시청 광장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에 있는 십자가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009년까지 2~3m 크기였던 십자가 크기가 1m 안쪽으로 줄었다.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는 시각이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문조 교수는 "과거엔 종교를 떠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 해를 정리하고 성탄절이 갖는 성(聖)스러운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