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골목은 토박이가 직접 '재생'합니더!

지난 11일 대구시 서구 달성공원 뒤편. 바람개비가 늘어선 길을 따라 들어가자 '행복한 날뫼골'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골목을 끼고 이어지는 단독 주택과 빌라 벽면에는 조개껍데기와 도자기 등으로 만든 '몽유도원도'가 반짝였다. 설치 작품처럼 보이는 튤립 모양 조형물은 밤이면 골목을 비추는 '꽃등(燈)'으로 변했고, 다양한 꽃과 나무가 놓인 골목길은 물레방아 정원, 터널 정원, 땅콩 정원 등 주민들이 붙인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주민 신경남(44)씨는 "딸 셋 키우는 동안 '혼자서는 다니지 말라'고 말하던 집 앞 골목길이 요즘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名所)가 됐다"고 말했다.

대구 서구 비산동에 있는 날뫼골은 대구시가 운영하는 '주민참여 도시학교'를 통해 도시재생을 진행한 동네다.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는 이번 정부가 주요 개발 사업으로 내세워 익숙하지만 대구시는 2007년부터 도시재생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운영해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민들이 직접 동네를 개발하는 주민참여형 도시재생 방식은 정부가 주도하는 도시재생보다 지속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관(官)이 아닌 민(民) 주도 도시재생

대구시는 도시재생이 화두로 떠오르기 전인 2009년부터 낙후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개발 계획을 직접 설계하는 '주민참여 도시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지도 교수가 10여명의 주민들에게 도시재생의 개념과 방법 등을 교육하고, 주민들은 약 8주 동안 마을을 어떻게 바꿀지 도시재생 사업 구상안을 만든다. 이렇게 주민들이 만들어낸 도시재생 사업안은 65개. 이 중 19개는 국가 공모사업에 선정됐고, 지자체 사업으로 선정된 곳까지 총 20개의 주민 아이디어가 실제 도시재생 사업으로 이어졌다.

날뫼골도 주민들 아이디어로 변화한 동네다. 달성토성 뒤편에 있는 이 마을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어려운 대표적인 노후 주거지였다. 주민들이 처음 떠올린 동네 이미지는 '폐가' '쉼터 부족' '쓰레기' 등이었다. 주민들은 8주간 토론을 통해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정원으로 만들고, LED 조명등을 달기로 했다. 2011년 직접 사업 구상안을 만들고 현재 마을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서정숙(53)씨는 "골목길마다 노출증 변태들이 몰려들어 애들 키우기 겁나던 동네를 바꿔보자는 마음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는데 동네가 변화하는 것을 보니 계속해서 마을 일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 말했다.

침산공원과 공단 사이 경사지에 슬레이트 지붕 주택과 저층 주택, 빌라 등으로 이뤄진 주거지역이 있는 침산 1동 주민 11명은 이달 초 도시학교를 졸업했다. 총 952가구 1986명이 거주하는 이 동네는 주민 20%가 65세 이상이며 전체 건물 중 57%가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이다. 주민들은 도시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통행이 어려운 급경사 도로에 난간을 설치하고, 물놀이장이 생겨나는 침산공원에 마을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비즈니스 허브를 건립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침산 1동 주민들의 도시학교 수업을 맡았던 김인성 영남대 가족주거학과 교수는"처음에는 '시에서 뭘 지어줬으면 좋겠다'는 요구만 하던 주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기업을 해보자' '집 근처를 바꿔보겠다'며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낸다"고 말했다.

◇본격 전국 도시재생은 이제 시작

정부는 2013년 6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고 2015년부터 도시재생 사업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정부의 지역 발전 정책에 따라 특정 지자체에 예산을 지원하거나 역세권·노후 산단·폐항만 등을 개발해 경제 거점을 살리는 방식 등이 주로 이뤄졌다.

이번 정부 들어서 '도시재생'을 부동산 정책의 핵심 사업으로 밀고 있지만 이 역시 주민 반발을 사는 경우가 많다. 서울역 인근 서계동·청파동은 지난 10년간 재개발을 추진하다가 정부가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해 개발이 불가능하게 되자 "주민 동의 없는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전문대학원장은 "최근 정부에서도 사회단체나 사회활동가들이 자율적으로 마을의 발전 방향을 설정하는 도시재생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며 "주민 참여형 도시재생의 경우 재정 지원이 끊기면 동력(動力)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해당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마을 운영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자생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