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속 잡동사니? 제 눈엔 다 보물이에요"

"별 볼일 없다고 내팽개쳐진 잡동사니 속에서 보물을 골라내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이병호(45)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은 수장고의 '인디아나 존스'로 불린다. 영화 속 인디아나 존스는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유물을 발굴하지만, 이 관장은 수장고에서 남들이 놓쳤던 유물과 자료를 재조명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그가 1998년부터 박물관 학예직으로 근무하면서 20년 가까이 백제 유물을 연구하고 전시해 온 이야기를 담은 '내가 사랑한 백제'(다산초당)를 펴냈다. 이 관장을 지난 1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났다.

"2005년 부여박물관에 내려가자마자 문화부에서 정기 감사를 나온다는 거예요. 남들은 귀찮아할 일이지만, 전 그걸 핑계 삼아 3개월 동안 소장품 8000점을 일일이 확인했죠." '창고지기'를 자처하는 그는 남들은 큰 관심을 주지 않았던 유물(정림사지 소조 상, 백제 연화문 수막새 기와)이거나 자료실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도면(일제시대 석촌동 고분군 관련 조사 도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림사지에는 5층 석탑 이전에 목탑이 있었다', '백제 석촌동 고분군은 기존에 알려진 100기 규모가 아니라 300기 규모', '백제가 불교를 통해 6세기 국제정치 지형에서 신라와 일본을 상대로 외교력을 발휘했다'. 지금까지 그가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을 통해 새롭게 펼친 주장들이다.

백제가 불교를 통해 6세기 국제정치 지형에서 신라와 일본을 상대로 '소프트파워'를 발휘했다는 주장 역시, 그간 학계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기와'를 통한 연구였다. 이 관장은 백제 양식 기와가 이차돈이 순교했던 신라 흥륜사, 일본 최초 불교 사원 아스카데라(飛鳥寺)에서 보인다는 데 착안했다. "백제가 신라와 일본에 기와 기술자인 와(瓦)박사를 파견했기 때문에 백제 양식이 남았던 거죠. 신라뿐 아니라 왜에도 불교를 전파한 이유는 불교를 통해 우호관계를 수립하기 위해서였고요."

그는 석·박사과정을 서울대에서 밟았지만 정작 박사 학위는 2013년 일본 와세다대에서 받았다. "백제의 신라·일본 불교 전파의 의미를 주제로 논문은 다 썼는데, 서울대 박사 학위 요건이었던 공인 영어시험 성적을 못 만들겠더라고요. 일본어 공부하다 보니 영어는 더 어렵게만 느껴지고…. 그래서 포기했는데, 학술대회로 인연이 닿았던 이성시 일본 와세다대 교수가 논문의 우수성을 평가해 박사학위를 주는 '논문박사제도'로 심사를 받아보라고 일러주시더군요."

그는 대륙을 달렸던 고구려도, 삼국을 통일한 신라도, 최근 재조명되는 가야도 아닌 백제에 집중했다. "2005년 백제를 공부하려고 부여박물관에 지망했어요. 건립 이후로 자원해서 내려온 학예사는 제가 처음이라고 했지요."

박물관에서는 "수장고에 있는 유물은 찾지 못할 뿐 절대 분실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쓴다. 이병호 관장은 "앞으로도 분실되지 않은 유물에서 분실됐던 역사의 조각을 찾아나갈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