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텅 빈 독… 조선업, 내년이 진짜 위기다

지난 18일 새벽 4시 30분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출입구. 홍성태 대우조선 노조위원장이 노조 간부와 함께 17m 높이 조명탑에 올랐다. 올해 임금 3.8% 인상을 요구했지만 회사가 거부하자 단식 고공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대우조선은 분식 회계와 경영 부실로 2015년부터 약 10조원의 세금을 지원받은 회사다. 법정 관리 위기에 처한 지난 4월 추가 금융 지원을 받을 때 노조는 10% 임금 반납에 동의했지만 지금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과 항의 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남 통영의 성동조선해양 독(Dock·선박 조립 시설)은 텅 비었다. 지난 11월 초 마지막으로 완성한 선박을 선주(船主)에게 넘겨주고 나서 더는 건조할 선박이 없어 조선소가 올스톱됐기 때문이다. 근로자 1200여명 중 조선소 유지·관리에 필요한 인력을 제외한 800명가량이 일손을 놓고 휴직에 들어갔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소형 조선소와 조선 기자재 업체는 이미 고사한 상태이고, 이젠 중견 조선사가 생사 기로에 섰고, 점차 대형 조선사로 옮겨갈 것"이라고 말했다.

◇韓 조선 올해 선박 수주 선방했지만… 평년 절반 수준

세계 1위를 자랑했던 한국 조선은 올해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력 감축과 일부 독 폐쇄, 자산 매각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섰지만, 작년 '수주 절벽'이 1년 6개월에서 2년의 시차를 두고 매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엔 상황이 더욱 나빠져 중견 조선사나 대형 조선사 할 것 없이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지경이다. 글로벌 조선 업황이 10년 불황을 끝으로 조금씩 회복 조짐을 보이는 데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올해 11월까지 세계 선박 발주는 1950만CGT(선박의 건조 난이도를 감안해 표준화물선으로 환산한 t수)를 기록했다. 작년보다 67% 늘었다.

하지만 이는 최악이었던 작년 '기저 효과'에 따른 것이다. 2010~2015년 연평균 선박 발주량(4262만CGT)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한국 조선은 올해 152척, 142억달러(15조4000억원)를 수주했다. 금액은 작년보다 3배 늘었지만 역시 2010~2015년 평균 수주액(359억달러)의 40% 수준이다. 선박 수주가 부진하면서 독에 남은 일감(수주 잔량)도 말라가고 있다. 11월 우리 조선사의 수주 잔량은 356척, 1579만CGT로 2015년 말과 비교하면 반 토막이 났다.

◇대형 3사 매출 뚝뚝… 중견 조선소 내년 생존 갈림길

2016년 선박 수주 부진은 올 하반기는 물론 내년 매출 부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조선사는 수천억~수조원 하는 선박을 수주할 때 매출로 잡히는 게 아니라 선박 건조 공정률에 따라 매출로 잡히는 구조다. 선박을 수주하고 설계 과정을 거쳐 실제 건조를 시작하기까지 길게는 2년가량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2016년 '수주 절벽'은 올 하반기와 내년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증권업계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내년 예상 매출액을 올해보다 각각 11%와 31%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만 5000억원 가까운 영업적자에 이어 내년에도 2400억원 적자를 예상했다.

대형 조선 3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독 폐쇄, 인력 감축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현대중공업은 자회사인 하이투자증권 매각, 인력 구조 조정 등 지금까지 3조5000억원 이상 자구 계획을 이행했다. 지난 9월부터는 일감이 없는 생산직이 돌아가며 휴직과 교육에 들어간 상태다. 대우조선도 사옥 매각, 인력 감축 등 구조 조정 중이며,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800억원가량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대형 3사는 생존이 가능하다 해도 채권단 자율협약 중인 성동조선해양이나 지난 7월 법정관리를 졸업한 STX조선해양과 같은 중견 조선소는 내년 회사를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정부는 산업 경쟁력 진단을 통해 내년 2월쯤 두 회사의 퇴출 또는 회생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조선업 취업자 수(고용보험 가입자)는 지난 11월 23.3% 줄었다. 8개월 연속 20%대 감소율을 보이면서 작년보다 4만2100명 줄었다.

◇내년 글로벌 조선업 10년 불황 끝자락… 업황 개선에 실낱 희망

내년 조선업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 그나마 작년과 올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 점차 회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고 있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10년 불황 사이클의 끝자락에 있다"고 했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해양 플랜트 분야 회복이 기대된다. 외신에 따르면 2017년 FPS(Floating Production System) 발주는 2014년 이래 가장 많은 150억달러로 회복했고, 앞으로 5년간 940억달러 투자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산업의 전반적인 침체로 구조 조정과 수주 절벽을 경험한 조선업은 양호한 세계경제 성장과 해상 물동량 증가에 따른 선박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면서도 "수주가 늘더라도 과거와 비교하면 미약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