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토끼 몸에 합성한 내 얼굴… 대화에 재미 더하다

"엄마, 나 오늘 막차 타고 들어갈게."

딸내미가 친구들과 술 마시느라 귀가가 늦어진다는 말에 주부 이혜숙(52)씨는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토끼가 무릎으로 곰의 배를 때리는 그림이다. 그런데 토끼와 곰 얼굴에 각각 모녀 얼굴이 합성돼 있다.

딸이 앱(APP)으로 만들어 스마트폰에 깔아준 '가족 이모티콘' 덕이다. 16개짜리 이모티콘 세트에 온 가족 얼굴이 들어가 있다. 이씨는 "필요한 말만 오가는 가족 대화방에서 이모티콘이 대화를 더 재미있고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다.

◇이모티콘 속으로 들어간 나

나와 가족, 친구나 직장 동료 얼굴을 담아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쓰는 '아이티콘(I+Emoticon)'이 유행이다.

'브라보' 'Sticky AI' 등 이모티콘 제작 앱은 즉석에서 사진을 찍거나 앨범에 저장된 이미지를 불러와 손쉽게 스티커(정지된 그림)와 이모티콘(움직이는 그림)을 만들어준다.

이모티콘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남짓. 햄버거나 닭다리, 농구공 안에 얼굴을 끼워넣거나 쥐·소·호랑이 같은 동물과 얼굴을 합성할 수도 있어 실제 판매되는 상품처럼 근사하다.

채팅 앱 라인(LINE)에서 스티커를 판매하는 '크리에이터스 마켓'에 들어가면 수익을 목적으로 만든 캐릭터 상품 사이사이에 느닷없이 '일반인 얼굴 스티커'가 등장한다. 직접 만든 '나만의 스티커'를 마켓에 올리고 내려받기하는 용도다.

라인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이모티콘을 올리려 계정을 등록한 일반인은 100만명, 팔려나간 이모티콘은 70만 세트에 이른다.

자체 제작 이모티콘은 스마트폰 세대에게 현재를 기념하고 추억하는 방식이다. 다섯 살 아들을 둔 직장인 유성민(29)씨는 "육아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 연예인 아기들 이모티콘이 채팅 앱에서 판매되는 걸 보고 만들었다"며 "우는 모습, 웃는 모습, 잠자는 모습 등 아이의 다양한 표정을 담았다. 부모님과 장인·장모님 스마트폰에도 깔아드렸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 속 '아워네트워크'

아이티콘의 유행은 문자보다 이미지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한 10~20대에서 먼저 불었다.

직장인 이미연(28)씨는 고등학교 동창들과 '친구티콘'을 만들어 쓴다. 그래픽을 전공한 이씨가 친구들 사진에 'OK' 'YES' 'NO' 같은 간단한 문구를 넣어 이모티콘으로 만든 것이다.

"채팅할 때 '알겠어' 같은 대답 대신 'OK'가 들어간 이모티콘을 자주 쓰잖아요. 친한 친구들 대화방이라 웃기게 나온 사진만 골라서 의사 표현용 이모티콘을 만들었어요."

아이티콘은 수많은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소셜네트워크 속에서 '아워(our·우리의) 네트워크'를 장식하고 소비하는 방식이다. 가족이나 친구, 친한 직장 동료 등 속 터놓고 이야기하기 편한 사람들로 묶인 그룹 채팅방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면서 친밀감을 확인한다.

광고 회사를 다니는 김성진(28)씨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팀 이모티콘'을 만든다. 기쁨·슬픔·동의·감사·거절 등 대화를 할 때 자주 쓰는 질문이나 대답 유형을 고르고, 직원들이 거기에 맞는 표정 연기를 펼쳐 이모티콘을 만든다. 김씨는 "남들이 만들어놓은 그림보다 재밌기도 하고, 결속력을 높여주는 느낌도 크다"고 했다. '○○티콘'이 관계 맺음의 또 다른 이름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