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2.29 10:04

미국 동부여행기③

내 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다. 평생을 잘 들리지 않는 귀로 힘들게 살다 가신 분이다. 단지 그곳에서 있었단 이유로 대우를 받는 사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난 흥분하곤 한다. 무공훈장을 받으신 아버지의 대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참전 수당 몇 푼이 전부셨다. 포화 속에 계셨던 탓에 다친 청력은 두고두고 아버지 생전을 힘들게 했다. 그 당시 열악했던 행정이나 의료진 탓에 아버지 혼자만의 몫으로 살다 가셨다. 아버지가 치르셨던 그 전쟁의 모습을 워싱턴의 한 공원에서 마주쳤다.

한국 전쟁 추모공원

공원에서 그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을 마주치자 가슴이 먹먹했다. 아버지와 같은 전장에서 어쩌면 아버지와 스쳐 지나쳤을지도 모를 그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미안함이 밀려들었다. 자신들의 전쟁도 아닌 남의 전쟁에 참전하여 쓰러져 갔던 그들이 이 추모공원에 동상으로 세워져 있었다. 판초 우의를 입고 비가 내리는 전쟁터에서 누구는 무전기를 들고 누구는 M1 소총을 들고 이기겠다는 결의가 가득한 얼굴로 빗속을 행군하고 있었다.

아버지 조지 대통령이 추진하고 클린턴 대통령 때 완성된 공원의 삼각형 작은 잔디밭 위에 19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원래는 38명을 세워야 했지만 작은 땅이라 다 세울 수 없어 절반인 19명만 세우고 나머진 19명은 옆 대리석벽에 새겼다. 너무 작다고,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하다가, 북침이라고, 혹은 그 참전 용사들을 홀대하는 사람들이나 정부를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했다. 누가 남의 나라에 와서 목숨을 바쳐 지켜 주겠는가. 내 아버지야 당신의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선 분이지만 그들이야 그럴 의무가 없지 않은가. 저절로 고개가 숙어져 그들을 위해 묵념을 드렸다.

제퍼슨 기념관

발길을 돌려 제퍼슨 기념관으로 갔다. 차에서 내려서 가는 길에 눈 닿는 곳마다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벚꽃 나무들이 서 있다. 그러면서 묘한 풍경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간간이 왜 워싱턴에서는 미국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지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런데 벚나무 즐비한 길을 걷다 보니 그 실체가 눈에 잡힌다. 워싱턴의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그리스풍이고, 여기는 또 생뚱맞게 일본풍이다. 이 벚나무는 일본이 기증해서 심었단다. 일본이 일으켰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처음에 모른 척 눈 감고 있던 미국에 바친 3000그루의 벚나무다. 일종의 뇌물인 셈이다.

조선일보DB

다들 알다시피 제퍼슨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 3대 대통령이다. 미국을 위해 수많은 일을 많이 한 대통령이지만 홀대받는 대통령 중 한 명이란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대통령 시절에도 수백의 흑인 노예를 가진 인물이어서 그렇단다. 시대적인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바라보이는 하얀 건물의 제퍼슨 기념관은 둥근 돔 형태로 지어진 그리스풍이다. 고대 이집트가 숭상한 오벨리스크 모양의 워싱턴 기념탑을 중심으로 백악관을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백악관 사람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제퍼슨이 모니터링이라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자 검은 입상(立像)의 제퍼슨이 맞이한다. 청동상으로 만들어진 그는 그 옛날 치렁치렁한 코트를 입고 서 있다. 어쩐지 약간 무섭다는 느낌도 든다. 동상 양 벽에는 그가 천명한 독립선언서가 새겨져 있다. 글의 맥락은 링컨이 말하는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과 비슷하다. 그가 주장했던,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았던, 노예 폐지는 그가 죽은 후 1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그가 한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후자를 고르겠다고 한 말이다. 그만큼 그는 언론을 중요시했고 신뢰했다.

그 말을 생각하며 요즘 우리 언론들을 생각해 본다. 한 대통령이 물러나고 다른 대통령이 등장했다. 약속이나 한 듯 언론에 등장하는 인물이 대폭 물갈이됐다. 익숙히 보았던 인물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인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저 평범한 소시민인 내 생각에 사라진 그들은 오늘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지 싶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은 과연 믿을 만한가? 라는 생각에 이르면 답이 없어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링컨 기념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링컨 기념관으로 향했다. 미국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 기념관은 미국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는 위치에 세워져 있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위인전으로 이 분을 먼저 접했던 기억이 새롭다. 위인전 속에 실린 ‘링컨’ 하면 떠오르는 일화 한 토막 때문이다. 어느 날 링컨 아버지가 외출한 뒤에 링컨은 집 앞 아름드리나무를 톱으로 잘랐다. 그 후 링컨 아버지는 톱이 잘 드나 보려고 나무를 잘랐다는 링컨의 말을 듣고 그 정직함에 용서했다는 이야기다. 당시 그 이야기를 읽고 감동했다. 우리 집이었다면 사연을 듣기도 전에 몽둥이를 들었을 거라는 생각에 그 장면이 참 부러웠는데 그건 허구란다. 그 얘기를 가이드에게 들으며 참 씁쓸했다. 왜냐면 우리 부모님과 비교하면 원망했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링컨 기념관 앞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워싱턴 시내 투어 때는 별로 안 보이더니 다 이곳에 와있는 모양이다. 파르테논 신전 모양의 기념관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기념관 계단 위쪽 계단 바닥에는 ‘I HAVE A DREAM’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인종차별 반대를 외친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연설했던 자리란다.

안으로 들어가니 정면에 대리석으로 만든 링컨이 의자에 앉아 있다. 너무 높은데 앉아있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봐야 했다. 위대한 대통령이라 높은 자리에 모셔 놨는지 사진 찍기엔 각도가 참 애매하다. 거기다 사람들까지 바글거리니 사진 한 장 찍기 참 힘들다. 이리저리 옮겨가며 사진을 찍고 보니, 왼쪽 벽엔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문이, 오른쪽 벽엔 링컨의 2번째 취임연설이 조각되어 있었다. 읽을 수 있는 건 왼쪽 벽의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다.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곳에 오면 어떤 생각이 들지 참으로 궁금하다.

링컨 기념관을 나오는 길에 40년 만에 지나간 추억을 더듬는 노신사와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물어보았다. “어떠셨어요? 40년 만에 링컨 대통령을 만나니?” 노신사가 환하게 웃는다. “자네 왔나? 난, 나를 잊은 줄 알았지. 다시 와서 고마우이.” 하더란다. 하하 웃으며 같이 계단을 내려서는데 워싱턴 기념탑이 비치는 인공 호수에 햇살이 들어 반짝인다. 그 햇살 속으로 ‘포레스토 검프’ 영화 속에 나오는 톰 행크스가 따라 들어와 달린다. 이곳은 영화 속에서 톰 행크스가 첫사랑을 만난 곳이다. 달리면서 그가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열어보기 전까지 무엇을 집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외친다. 그래 열어 보기 전까진 알 수 없지. 어쩌면 보스턴에서 내 인생 전환점이 올지 모르잖아. 그곳으로 가 보자. 인생이란 알 수 없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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