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무서워 다니겠나… 크레인 공포, 출근길을 덮쳤다

28일 오전 9시 40분쯤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화장품 회사 철거 현장에서 크레인이 넘어지며 도로 위 버스를 덮쳤다. 이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서모(여·53)씨가 숨지고, 승객 15명이 다쳤다. 부상자 중 1명은 중상이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70t짜리 크레인이 5t짜리 굴착기를 건물 5층 옥상으로 들어 올리다가 발생한 사고"라고 밝혔다. 크레인이 덮친 버스 지붕 부분은 1ｍ 깊이로 움푹 찌그러지며 차 내부의 손잡이가 바닥까지 닿을 정도였다. 크레인이 옥상으로 옮기려 했던 굴착기는 훅(갈고리)에 매달린 채로 도로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올해 타워크레인 사고로 17명이 사망하는 등 중장비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건설 현장의 인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사망한 것은 처음이다. 사고 후 인터넷상에는 "마른하늘에 이런 날벼락도 없다" "이제는 하늘만 쳐다보며 '뭐가 떨어지는 게 아닌지' 살피고 다녀야 하나" 등의 글이 올라왔다. 타워크레인은 덩치가 크고 매번 설치·해체 작업을 해야 하는 등 사용 방법이 까다롭지만, 일반 크레인은 크기가 작고 이동식이다 보니 건설 현장에서 안전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 현장 안전 관리 부실로 인부들이 목숨을 잃더니 이제는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폐기물 더미 위에서 운행한 크레인

사고 크레인은 이날 폐기물 더미 위에서 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5t 굴착기를 들어 올리는데 단단한 지반이 아니라 건축물 잔해가 덮인 약한 지반 위에 있었던 것이다. 강서소방서 관계자는 "지반을 단단하게 다진 후 작업을 해야 하는데 급하게 작업하려다 보니 위험을 무릅쓴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사고가 난 크레인의 붐대(크레인 팔의 역할을 하는 기둥)는 굴착기를 매달아 하중이 쏠려 있던 앞 방향이 아닌 옆으로 꺾였다. 목격자 김모(62)씨는 "크레인이 넘어가기 전에 '삐삐'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고음은 크레인이 균형을 잡지 못할 때 나는 것이다. 사고 크레인이 넘어지는 장면이 담긴 영상에서는 크레인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반대편 바퀴가 위로 들리는 모습이 나온다.

사고 현장에서 크레인이 운행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박병석 국토교통부 건설산업과장은 "굴착기가 크레인 붐대 끝부분에 달린 줄에 매달려 있었는데, 이 지점에서는 5t 무게를 지탱하기 어렵다"고 했다. 물체를 붐대 끝에 매달수록 크레인이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는 줄어든다. 사고 크레인의 경우 붐대 높이 4.2ｍ 지점에 물체를 매달 경우 70t을 들어 올릴 수 있지만, 50ｍ 지점에 매달 경우 기울기에 따라 0.9~6.7t의 물체만 들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면이 불안정 할때 받쳐야 하는 안전판이 현장감식 중에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크레인 무게 때문에 땅이 움푹 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크레인 지지대 아래 쇠로 된 안전판을 깔아야 한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사고 크레인을 운전한 조종사는 이 공사장에 한 달 만에 투입된 사람"이라면서 "장비가 손에 익지 않고 바뀐 환경에서 운전하다 대형 사고가 난 것 같다"고 했다.

◇끊이지 않는 크레인 사고

공사장 크레인이 공사 관계자가 아닌 일반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 사례는 최근 몇 년간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8월 대구시에서는 20층 아파트에서 이삿짐을 옮기던 크레인이 넘어져 운전자가 다치고 일대 1100여 가구가 정전됐다. 2015년 12월 경남 김해시 복합문화센터 신축 공사장에선 100t 크레인이 철골을 옮기다 옆으로 쓰러져 인부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다. 지난해 10월 서울 송파구에선 지하철 9호선 공사 현장에서 크레인이 넘어지며 인근 도로를 지나던 승용차를 덮쳤다. 같은 해 12월에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6층짜리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크레인이 쓰러지며 지나가던 행인이 다쳤다. 2015년 3월 경북 구미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새 건물을 짓던 중 크레인이 학교 건물을 덮쳐 이틀간 임시 휴교했다.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크레인 안전 관리 소홀은 공사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 누구에게나 피해를 줄 수 있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다른 중장비보다 안전 관리를 훨씬 더 엄격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