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23)씨는 얼마 전 소셜미디어 서비스 인스타그램에 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루 일과와 감상을 손으로 쓴 뒤 사진 찍어 올린다.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써온 일기의 '디지털 버전'을 추가한 셈이다.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용은 '속마음 다이어리'라고 이름지은 일기장에 따로 적는다. 공유하지 않는다. 하루 중 가장 솔직해지는 시간이랄까. 조씨는 "간단하게라도 기록해 두면 훗날 내게 주는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일기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자신을 성찰하고 인생의 기록을 남기는 일기의 효용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 꾸준히 쓰기가 쉽지 않아 방학 숙제의 추억으로만 간직한 이들이 많았지만 최근 일기 쓰기를 도와주는 상품과 서비스가 많아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기 쓰기용 스마트폰 앱(응용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서점의 자기 개발 코너에서도 일기 관련 책들이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일기 앱(응용프로그램)인‘하루 백자-원고지 일기장’. /이명원 기자
인터넷 공간에서는 일기 쓰기를 취미이자 놀이로 즐기기도 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타인과 멀어지면서 개인이 자신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문화적 코드의 한 예"라고 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쓴 수십만 편의 일기가 공유되고 있다. 손으로 눌러쓴 뒤 색색의 사인펜과 테이프, 스티커로 정성껏 꾸며 '인증'한 일기다. 배진리(25)씨는 "글을 쓰고 종이를 자르고 스티커를 붙이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더 열심히 쓰자는 동기 부여도 된다"며 "내게는 하루의 마무리인 동시에 취미"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일기 앱도 다양하다. '하루 백자-원고지 일기장'은 '구글플레이 2017 올해를 빛낸 앱'으로 선정됐다. 일기 쓸 시간임을 알려주는 알람 기능이 있고, 화면에는 100자짜리 원고지가 화면에 뜬다. 자판을 두드려 짧은 일기를 쓴 뒤에는 카카오톡 등을 통해 친구에게 보낼 수 있다. '세줄일기' 사용자도 20만명을 넘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 세 줄짜리 짧은 글을 붙이는 방식. 어린 시절 그림일기의 디지털판이다.
일기를 주제로 한 책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올해 하반기 출간된 일기 책만 5종이 넘는다. '하루 3줄 영어일기'(한빛비즈)는 일기도 외국어 공부도 꾸준함이 생명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오늘 산 물건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은 무엇인가요?'처럼 구체적 질문이 페이지마다 나오고 답을 영어로 쓰는 형식이다. 세 줄짜리 영어 예문과 주요 어휘도 함께 제공한다.
'하루 5분 아침일기'(심야책방)는 일기를 꼭 저녁에 쓰라는 법은 없다는 데 주목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오늘 일어난 멋진 일 3가지는?'처럼 하루를 시작할 때와 마무리할 때에 적당한 질문을 준다. 이 책을 기획한 임나리 팀장은 "짧은 시간, 짧은 글로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일기"라며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려는 적극적인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