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는 냉탕·온탕… 체감경기는 "그냥 냉탕"

지난달 국내 소비가 8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나고 생산·투자도 증가하며 '트리플 강세'를 보였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냉랭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등 호황을 누리는 일부 업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은 성장의 온기(溫氣)를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들쭉날쭉한 경기 지표

생산·투자·소비 등 11월의 주요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였지만 추세를 보면 롤러코스터를 타듯 들쭉날쭉하여서 상승세라고 보기 힘들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11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1.2% 증가했다. 하지만 산업생산은 지난 8월 보합(증가율 0%)이었다가 9월 0.9% 증가한 뒤, 10월에는 큰 폭으로 감소(-1.8%)했다. 11월 산업생산이 다시 증가했지만, 아직 10월 감소 폭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업종별로 보면 화학제품 생산이 줄었지만, 완성차 증가와 반도체 업체들의 설비 증설 등으로 자동차·기계장비 생산은 호조를 보였다. 제조업 재고는 전월보다 1.7% 감소했고,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전월과 같은 71.3%였다.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5.6% 늘었다. 2009년 2월 5.8% 이후 8년 9개월 만의 최대 폭이다. 깜짝 소비 증가 덕분에 소매판매는 10월 감소(-2.9%)의 충격에서 벗어났다. 주환욱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11월엔 승용차와 스마트폰이 잘 팔린 데다 이른 추위 때문에 의복 판매도 늘어 소비가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통신기기 판매는 전월 대비 17.1% 급증했고, 승용차와 의복 판매도 각각 12.3%, 9.7% 늘었다.

설비투자도 자동차 등 운송장비 투자 증가에 힘입어 전월 대비 10.1% 증가했다. 지난 3월(13.4%) 이후 8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 이미 이뤄진 공사 실적을 뜻하는 건설기성은 토목과 건축 부진으로 전월보다 3.8% 감소했다. 앞으로 경기 상황을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전월보다 0.1포인트 떨어진 101.2로 3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어운선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경기선행지수가 3개월 연속 떨어졌지만, 경기 확장과 위축의 경계선인 100을 넘었기 때문에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체감경기는 악화

하지만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악화일로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최저임금 인상에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 금속부품 제조 T사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정부가 일자리 늘리라고 재촉하지만 인건비 부담이 큰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있는 사람을 줄여야 할 판"이라며 "특히 경남은 지역을 먹여 살리던 조선업과 기계산업의 극심한 불황으로 공단 전체가 문 닫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의 금형 제조업체 S사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대기업을 공공의 적처럼 위축시키니 대기업과 협력관계인 중소기업들도 덩달아 업황이 안 좋다"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임금이 오르는데 한국인 근로자는 어차피 채용이 어렵다. 결국 외국인 임금만 올리는 꼴인데 이게 정말 맞는 정책 방향이냐"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의 경기전망지수는 2개월 연속 하락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3150개를 대상으로 '2018년 1월 중소기업경기전망조사'를 실시한 결과, 업황전망 중소기업건강도지수(SBHI)가 84.3으로 전달보다 4.8포인트 내려갔다고 28일 밝혔다. SBHI가 100보다 높으면 다음 달 경기가 좋다고 전망한 업체가 많다는 뜻이고, 100보다 낮으면 그 반대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계속되는 내수 부진 현상과 인건비 상승에 대한 중소기업인들의 부담감을 드러낸 조사 결과"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체감경기도 좋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내년 1월 전망치가 96.5를 기록, 20개월 연속 기준선인 100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외환위기 전후인 1996년 7월부터 1999년 1월까지 31개월 연속 기준치를 밑돈 이후 최장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