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맞이 불법주차, 소방서까지 틀어막았다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7시 50분쯤 경포119안전센터. 20만명 일출 관광객이 몰려든 경포해수욕장으로 현장 근무를 나갔던 소방관들이 복귀했다. 안전센터로 들어오니 앞마당에 차량 10여대가 빼곡히 주차돼 있었다. 소방 펌프차와 구급차가 진입할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해맞이를 위해 온 사람들의 불법 주차 차량이 점령해 버린 것이다. 소방관들이 일일이 차량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빼는 데 꼬박 40분이 걸렸다. 한 소방관은 "응급 환자나 화재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29명이 숨진 제천 화재는 불법 주차로 소방차 진입이 지연되면서 피해가 커졌다. 화재 진압과 구조를 가로막는 불법 주차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지적이 계속 나온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기본적인 안전 질서를 무시하는 시민의식은 그대로다.

◇소방차 출동 통로에 세워진 불법 주차

경포안전센터 대원 전원은 올해 처음 해변으로 나가 비상 대기 근무를 했다. 현장에서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약 두 시간의 현장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소방관 6명을 맞이한 것은 앞마당을 가득 채운 불법 주차 차량이었다. 안전센터에서 경포 해변까지 거리는 약 200m. 일출을 좀 더 편하게 보려는 이들이 소방서 정문을 지나 앞마당까지 들어온 것이다.

경포안전센터에는 펌프차 2대와 구급차 1대가 있다. 이날 현장 출동한 소방관이 펌프차 1대와 구급차를 몰고 나갔지만, 펌프차 1대는 여전히 안전센터 안에 있었다. 화재 등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면 펌프차 1대는 불법 주차 때문에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방서 앞 주차는 금지돼 있다. 화재나 구급 상황 시 긴급 출동을 위한 진·출입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소방용 기계·기구가 설치된 곳으로부터 5m 이내인 곳은 주차하지 못한다. 이를 어기면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린다. 안전센터 관계자는 "매년 해맞이 행사가 있었지만 이렇게 차가 무더기로 주차된 것은 처음 본다.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그동안 경포안전센터 앞마당 불법 주차 문제가 없었던 이유가 성숙한 시민의식 때문은 아니다. 매년 일출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차를 대겠다며 온다. 그때마다 직원들이 나가 돌려보냈다. 이번엔 대원들이 모두 현장 근무를 나가 제지하는 이가 없어지자 바로 '난장판'이 된 것이다. 한 센터 관계자는 "걱정은 됐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소방관 6명이 차량 앞유리에 적힌 번호로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차량을 빼달라고 요구했다. 몇몇 사람들은 10여분 전 뜬 해를 보고 차 안에서 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차를 빼려고 했지만, 안전센터 입구 쪽에 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돼 있어 나갈 수가 없었다. 일부는 바깥쪽 불법 주차 차주에게 "차 좀 빨리 빼라"며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변한 게 없다"

경포119안전센터는 강릉시 경포동, 초당동, 사천면 일대를 담당한다. 주변에 호텔 등 다중 이용 시설이 밀집해 있다. 경포대 일대에서 사고가 났을 때 경포안전센터를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곳은 포남119안전센터. 5㎞ 정도 떨어져 있어 평소 차로 10분 이상 걸린다. 하지만 이날 경포대 일대는 해맞이 인파로 인해 극심한 차량 정체를 빚었다. 거리 양옆으로 불법 주차 차량이 늘어서 있었다. 소방 관계자는 "사고가 났다면 소방 차량이 신속히 현장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경포안전센터 불법 주차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대학생 오세용(22)씨는 "소방관이 자리를 비운 새 소방서에 주차하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오씨가 올린 게시글엔 '저 사람들 자기 집이 불타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저래 놓고 사고 터져서 사람 죽으면 늑장 구조니 시스템 문제니 하는 게 우습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이 나라는 변한 게 없다' '적폐는 바로 국민들' '개의 해 아니랄까 봐 새해 첫날부터 참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라고 했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견인으론 부족하다. 폐차장으로 가져가 부숴 버려야 한다' '건당 100만원씩 과태료 물려야 한다'는 반응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