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샘터', 미디어 스타트업 운동장 됐다

서울 대학로의 상징이던 옛 샘터 사옥이 새 단장을 마쳤다. 지난해 9월 부동산 투자회사 공공그라운드가 인수해 4개월 만에 젊은 세대의 실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책이 쌓여 있던 출판사 사무실이 유튜브 영상을 찍고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미디어 스타트업의 터전으로 변했다.

지난달 29일 개조 공사가 마무리 중인 옛 샘터 사옥에선 토론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임대 사무실이 있었던 건물 3층은 60여 평의 탁 트인 교실이 생겼다. 토론과 탐구 위주로 학생 중심 수업을 진행하는 '거꾸로 교실'이다. 미국에서 시작한 교육 운동으로, 국내에서는 현직 교사들이 중심이 된 비영리기구 미래교실네트워크가 도입했다. 건물 바닥에는 몸보다 큰 색색의 쿠션을 뒀다. 드러누워 책을 읽거나 친구와 토론하기 좋다. 정면과 오른쪽 벽면에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설치해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적을 수 있다.

출판사가 있던 4층은 신생 벤처기업들의 공유 사무실로 변했다. 10대들에게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인 쥐픽쳐스와 한국과 관련한 뉴스를 영어로 외국에 전달하는 코리아 엑스포제 등 신생 미디어 기업이 들어왔다.

공간의 변화를 이끌어낸 공공그라운드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을 매입해 적정 수준의 수익을 올리면서 공공을 위한 가치도 함께 추구하겠다는 목표로 세워진 신생 회사다. 건물은 2016년 샘터사를 창립한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별세하면서 매물로 나왔다.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인 김수근(1931~1986)이 설계해 1979년부터 대학로를 지켜온 상징이 팔린다는 소식에 문화계가 긴장했다. 붉은 벽돌집과 그 벽돌집 꼭대기 층까지 푸르게 덮었던 담쟁이덩굴이 사라질까 우려했다. 김재순 전 의장의 아들인 김성구 샘터사 대표는 "상속세 부담이 컸다. 출판을 지키려면 사옥을 처분하는 길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옥의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에게만 팔겠다"고 했다. 이때 나선 것이 공공그라운드였다. 제현주 공공그라운드 대표는 "사회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부동산을 보존하자는 게 회사의 창립 정신"이라며 "샘터를 젊은 세대가 미래의 교육과 미디어를 위해 새로운 해법을 고민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제 대표는 건물 외관을 최대한 개축하지 않고 보존할 방침이다. 다만 샘터 간판은 이달 내 공공그라운드 로고로 교체할 예정이다. 파랑새극장이 있었던 지하 1층은 미디어 소극장으로 꾸민다. 강연과 이벤트가 이뤄지고 이를 실시간 라이브로 송출한다. 휴대폰이 있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직원들의 휴게실이었던 옥상 공간은 팟캐스트 스튜디오로 변했다. 오디오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시민 누구나 대관해서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대학로에 있는 문화 창작자들과도 교류할 예정이다. 제 대표는 "매일 저녁 공공그라운드에 가면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