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전세계 '누군가'에게서 온 새해 편지

'알레스 구테 퓌어스 노이에 야르!(Alles Gute fürs neue Jahr!)'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희주(24)씨는 지난달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독일인에게서 '최고의 새해가 되길 바라요'란 뜻의 인사가 적힌 엽서를 받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이 엽서엔 김씨가 좋아하는 록밴드 비틀스의 사진과 함께 손 글씨로 쓴 독일어가 적혀 있었다.

김씨가 익명의 독일인에게 새해 인사를 받을 수 있었던 건 '포스트크로싱(postcrossing)' 덕분이다. 전 세계 모르는 사람들과 엽서를 주고받는 놀이. 김씨는 "만나본 적 없는 외국인이 비틀스를 좋아한다는 내 소개 글을 읽고 문구점에 가 비틀스 엽서를 골랐을 생각을 하니 감동적이다"며 "독일인만 아는 여행 명소를 추천받고, 루마니아인들이 좋아하는 음악가를 소개받는 등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익명의 외국 사람과 엽서를 주고받는 포스트크로싱이 20~30대 사이 인기다. 2005년 포르투갈에서 시작한 이 놀이는 해외의 엽서·우표 수집가들 사이 유행했다가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2012년부터 세계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휘발성 강한 SNS 메시지에 질린 이들이 과거 아날로그적 소통 방법에 향수를 느끼며 포스트크로싱을 주목한 것.

웹사이트(postcrossing.com)에 가입해 자기소개와 주소를 영어로 남기면 운영자가 엽서를 주고받을 상대를 임의로 골라준다. 이 사이트를 통해 그간 세계 214개국으로 오간 엽서만 4476만장. 지난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해 국내에서 발신된 포스트크로싱 엽서가 20만개에 달한다.

'익명성'과 '일회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펜팔'과는 다르다. 포스트크로싱은 엽서를 보내는 사람에게만 받는 이의 자기소개 글과 주소가 공개된다. 엽서를 보낼 때도 보내는 이의 이름을 적지 않기 때문에 받는 이는 엽서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기 어렵다. 엽서를 받은 사람은 보낸 이에게 답장하는 대신 운영자가 새롭게 지정해 준 외국인에게 엽서를 보낸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쉽게 휘발되지 않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도 깊은 관계를 맺는 데서 오는 책임감과 부담감은 피하고 싶어 생긴 현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