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 눈뜬 6억명… 동남아로 가는 한국 기업들

베트남 하노이에서 승용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LG하이퐁캠퍼스.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LG화학 등 LG그룹 계열사가 모인 글로벌 생산 거점이다. 지난달 20일 이곳에선 LG디스플레이의 OLED 모듈 공장 철골 공사가 한창이었다. LG디스플레이는 이곳을 향후 주력 제품인 OLED 모듈의 주 생산기지로 삼을 예정이다. 류남기 LG전자 하이퐁 캠퍼스 관리담당(CFO)은 "하이퐁캠퍼스에서 생산된 휴대폰, TV, 세탁기는 동남아뿐 아니라 유럽과 남미로 수출된다"고 말했다. LG는 10년간 15억달러를 더 투자할 예정이다.

지난달 19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남부 중심가인 메가 쿠닝안(Mega Kuningan)에 위치한 롯데쇼핑 애비뉴. 1층 화장품 코너에 질밥(Jilbab·이슬람식 여성 의복)을 쓴 여성들이 제품 설명을 듣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같은 층 삼성전자의 체험형 플래그십 스토어 'GIES'에는 갤럭시 스마트폰을 사려는 현지 젊은이로 북적였다. 남승우 롯데쇼핑 애비뉴 법인장은 "주말의 경우 하루 방문객은 4만명"이라고 말했다. 2013년 문을 연 뒤 매년 15% 늘고 있다.

동남아가 글로벌 생산기지이자 소비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남아는 인구가 중국·인도에 이은 세계 3위(6억4000만명)이고, GDP(국내총생산)는 매년 6% 가깝게 고속 성장하는 세계 6위 경제 대국이다(ASEAN 10개국 기준). 중국의 사드 보복을 겪은 우리 기업은 특히 '포스트 차이나(Post China)'로 꼽히는 아세안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작년 말 보고서에서 "아세안은 2018~2020년 매년 5.2% 굳건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3위 인구, 6위 GDP 동남아 공략하는 韓 기업들

한국 경제에서 동남아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커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작년 대(對)아세안(ASEAN) 수출은 전년보다 27.8% 급증한 952억달러(101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07년 이후 10년 만에 수출은 약 3배로 늘었고,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서 16.6%로 커졌다. 특히 작년 한국의 베트남 수출은 47% 급증, 한국의 수출 대상 국가 순위가 2014년 6위에서 작년 3위로 뛰어올랐다.

동남아는 노동 집약적 산업 생산 기지에서 이젠 전기·전자 등 하이테크 생산 기지로 변모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승용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박닌성 옌퐁공단에는 삼성전자·삼성SDI·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 공장이 빼곡했다. 베트남 옌퐁과 타이응우옌성 공장은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절반을 생산한다. 두 곳의 삼성 직원만 16만명,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20만명에 달한다. 2013년 이후 베트남의 수출 품목 1위는 계속 휴대전화와 전자제품이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 수출 상품을 바꾼 것이다.

섬유·의류 업체는 인건비가 싼 미얀마나 캄보디아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지난달 22일 찾은 미얀마 양곤 외곽의 신성통상 공장엔 여직원 3000여 명이 재봉기에 앉아 겨울용 다운 재킷과 봄철 의류를 생산하고 있었다. 신성통상은 미얀마에 7개 봉제공장을 운영하며 1만명을 고용한 미얀마 최대 규모의 봉제업체로 성장했다.

◇6억명 내수 시장 공략 나선 유통·식품 업체

동남아는 ‘인건비 싼 생산기지’를 넘어 인구 6억명의 초대형 소비시장으로 성장 중이다. 우리 유통·식품 업체도 동남아 시장에서 ‘굴기(?起)’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베트남 호찌민시 북부의 이마트 고밥(Go vap)점 대형 주차장은 1500여 대의 오토바이로 꽉 차 있었다. 하루 쇼핑객은 평일 1만명, 주말 1만5000명 수준이다. 팩당 22만동(약1만원)이 넘는 한국산 딸기 매장과 축산물 매장에는 20~30대 소비자가 길게 줄을 섰다. 이마트는 현재 호찌민에 2호점 점포 개설을 추진 중이다. 롯데쇼핑 애비뉴도 2020년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호점을 열 계획이다. 현재 45개 점포인 롯데마트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식품업계의 동남아 진출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호찌민 탕푸(Tanphu) 지역의 CJ푸드 베트남 공장에선 ‘비비고 김치’ 생산이 한창이었다. 직원 홍뚜깜씨는 “최근 외국 음식을 즐기는데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다”고 했다. CJ제일제당은 김치공장에 이어 ‘카우제’, ‘민닷푸드’ 등 베트남 식품회사를 차례로 인수했다.

동남아 소비 시장은 인구 6억4000만명 중 40세 이하 젊은 인구가 66%에 달한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또 소비 능력이 큰 중산층도 급격히 증가하는 중이다. US·아세안 협의회는 2030년 아세안 인구의 절반가량인 3억3400만명이 중산층이 되면서 미국(2억800만명)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트남 등 동남아 6개 국가 스마트폰 이용자 수는 2020년 미국(2억4150만명)을 추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