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05 00:29

[2018 세계 무대를 누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에 '세운상가' 전시하는 건축가 김성우
"지역 가치에 대한 공감대 만들어 새로운 유형의 도심 개발 필요"

2년에 한 번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건축의 도시'가 된다. 세계 건축계 최대 행사인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이 오는 5월 막을 올린다.

건축가 김성우(44·엔이이디 건축사사무소 소장)는 올해로 열여섯 번째를 맞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에 참가한다. 국가관은 각국 건축 이슈와 주목받는 건축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 말하자면 '건축 국가대표'다.

건축가 최춘웅, 건축회사 바래(BARE), 설계회사(SGHS)와 함께 참가하는 김성우는 서울 세운상가를 주제로 잡았다. 세운상가는 6·25 이후 국가가 주도한 한국 도시화의 특성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3일 서울 일원동 엔이이디건축에서 만난 김성우 소장.
3일 서울 일원동 엔이이디건축에서 만난 김성우 소장. 5월 개막하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세운상가와 서울 도심 개발을 주제로 전시하는 그는“개발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지킬 것은 지키며 개발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세운상가를 맡은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였던 2010년대 초반 김태형 강사(현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장), 이종호 한예종 교수와 함께 을지로 일대를 연구했다. 2014년 이 교수가 세상을 떠나자 연구팀은 없어졌다. 그는 학교를 나와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을지로 연구를 이어갔다. 김성우는 "학생들과 연구할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며 "그런 아이디어를 베네치아에 가져갈 것"이라고 했다.

첫째는 "입이 딱 벌어지는 세운상가의 옥상 전망"이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어서 멀리 산을 배경으로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집니다. 그 앞엔 조선시대 종묘부터 현대 건축물까지 촘촘하게 중첩돼 있죠. 이런 경관은 세계 도시 어디에도 없어요." 경제적 잠재력도 중요하다. 그는 "바로 옆 을지로4가는 중국 관광객들의 버스가 모여드는 곳이고, 을지로 3가는 도심 상업지구로 연결되는 접점이어서 경제적 가치 창출에도 유리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방향으로 개발될 세운상가 일대를 모형으로 만들고, 주변 지역과 세운상가를 연결하는 진입로 활성화 방안을 영상으로 표현할 계획"이라고 했다.

옛것이 소중하니 내버려두자는 주장이 아니다. 김성우는 "세운상가는 지금 동면(冬眠) 중"이라며 "재개발 계획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기다리는 상태"라고 했다. "일대가 슬럼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싹 밀어버릴 게 아니라, 이 지역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섬세한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서울엔 실제로 그런 개발이 진행된 사례가 있다. 서촌(西村)이다. 아파트촌 건설 계획이 지지부진한 동안, 사람들은 오래된 동네 특유의 분위기에 눈뜨기 시작했다. 이제 재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사라졌다.

김성우는 서울대 건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에서 건축설계·도시연구를 전공했다. 국내 현실을 면밀히 연구하고 설계에 반영하는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한예종 시절 진행했던 소규모 주거에 대한 연구도 지금 그가 하는 설계의 밑바탕이 됐다. 대표적으로 서울 상계동 원룸 '341-5'가 있다. 폭 4.5m짜리 대형 테라스를 원룸에 만드는 파격적 아이디어로 김수근 프리뷰상, 미국건축사협회(AIA) 뉴욕지부 준공작 부문 우수상 등을 받았다.

작년 8월 서울 일원동 2층짜리 단독주택을 개조해 자택 겸 사무실을 만들면서 자신의 연구를 직접 실천했다. 그는 "사무실이 2배 이상으로 넓어졌고, 아파트 살 때 초등학생 두 아들에게 입버릇처럼뛰지 말라고 주의를 주던 스트레스도 사라졌다"고 했다. "전문직 개인 사업자나 자영업자가 주택과 사무실에 투자한 자금으로 단독주택을 사들여 개조하면 공간은 쾌적해지고 집에서 일할 수 있게 됩니다. 원룸촌이 삭막한 건 주인이 다른 데 살고 동네를 돌보지 않기 때문이에요. 주인이 사는 집이 늘어나면 동네도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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