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기념 지폐에 한국 올림픽 도전 역사 담았죠"

"세계 '돈 시장'은 벌써 평창으로 후끈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롱패딩'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바로 2000원짜리 평창 올림픽 기념 지폐다. 기념 동전은 스포츠 대회가 열릴 때마다 만들었지만 기념 지폐를 찍은 것은 국내 최초다.

지난 11월 발행한 230만장(46억원어치)이 2주도 안 돼 다 팔렸다. 국내 스포츠 대회 사상 첫 '완판' 기록이다. 화폐 마니아들이 몰려 판매 3일 만에 매진된 24장짜리 세트는 판매가(16만8000원)의 4~5배인 70만~80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기념 동전도 "선수들 동작이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응원 도구 대신 기념 화폐로 평창올림픽을 알리는 이들은 한국조폐공사 디자인팀이다. 88 서울올림픽부터 2002 월드컵, 2018 평창올림픽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전영율(56) 디자인연구센터장과 디자이너 홍소영(42) 차장, 김재민(42) 과장 등 8명이 힘을 모았다.

홍 차장과 김 과장은 "2016년 초 평창 프로젝트를 처음 맡았을 때는 무엇을 그려 넣을지 난감했다"고 했다. 동계 스포츠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동안 수천 장이 넘는 경기 사진, 영상과 씨름하면서 전문가가 됐다. 김 과장은 "지름 3㎝짜리 작은 원 안에 가장 열정적인 경기 순간을 담아내야 했다"며 "종목마다 시안(試案)을 100여장씩 그렸다"고 했다. 선수의 입과 손, 근육의 선 하나를 그릴 때도 가장 실감 나는 '황금 비율'을 찾았다. 3만원짜리 금화에 담긴 강원도 전통 '고로쇠 스키'를 그리기 위해 평창 황병산에서 고증 작업을 하기도 했다.

기념 지폐 앞면을 장식한 종목은 스피드스케이팅이다. 우리나라의 금메달 밭인 쇼트트랙이나 김연아가 뛴 피겨스케이팅이 아니라 처음에는 논란도 있었다. 전영율 센터장은 "우리나라가 1948년 처음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 동계올림픽 종목이 스피드스케이팅"이라며 "한국의 올림픽 도전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잘생기고 예쁜 선수 사진을 수십 장씩 뽑아놓고 눈, 코, 입을 조합해 시안을 수십 번 다시 그렸습니다."

전 센터장은 "평창 기념 지폐는 남녀평등 정신을 강조했다"고 했다. 자세히 보면 앞에서 달리는 선수는 남자, 뒤 선수는 여자다. 여자 선수는 어깨와 허벅지 근육을 부드럽게 다듬었다. 지폐 곳곳에 그려진 6개 종목도 3대3으로 남녀 성비(性比)를 맞췄다. 바이애슬론과 루지, 컬링에 여자 선수가 등장한다.

평창올림픽 기념 지폐는 화려하기보다 수수하다. 전통 수묵화 분위기가 묻어난다. 여백의 미를 살리기 위해 배경을 과감하게 비우고, 구름을 그려 달을 표현한다는 '홍운탁월' 화법도 적용했다.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보통 지폐의 6분의 1 수준인 5미크론(1000분의 5㎜) 굵기의 가는 선으로 그렸다. 정밀 프린팅 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기념 지폐 뒷면에는 우리나라의 상징 동물인 호랑이를 그려넣었다. 호랑이를 가장 실감 나게 그렸다는 평을 받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가 최종 낙점됐다.

"우리 선수들이 기념 지폐 속 호랑이처럼 힘차게 펄펄 날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