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물 복서' 이병헌, 눈물까지 일품이네

익숙한 재료와 맛은 힘이 세다. 같은 찌개라도 최고 재료로 끓여냈다면 잊지 못할 한 끼가 될 수 있다.

17일 개봉하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김현석)은 최고 재료로 만든 익숙한 소품이다. 장점도 한계도 명확하다. 재료로서 윤여정, 이병헌, 박정민 등 배우 연기는 최고. 하지만 헤어졌다 다시 만난 가족의 불협화음, 자폐증과 천재성을 함께 갖는 '서번트증후군' 음악 천재, 시한부 엄마의 모성애 같은 이야기는 흔했다. '레인맨' '샤인' '호로비츠를 위하여' '형' 등으로 익숙한 리듬. 하지만 관객 눈물을 끌어내는 힘 역시 만만치 않다.

한때 웰터급 동양 챔피언까지 올랐지만 퇴물 복서가 된 조하(이병헌)는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했던 엄마(윤여정)와 우연히 재회한다. 숙식을 해결하러 따라간 엄마 집에서 입만 열면 "네~" 타령인 동생 진태(박정민)를 만난다.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진태는 게임과 라면 끓이기도 천재지만, 무엇보다 피아노 연주 재능이 놀랍다. 형제는 티격태격하다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그러나 형과 어머니 사이에 오래된 아픔의 골이 깊고, 설상가상 어머니의 병은 계속 악화된다.

'국제시장'(1426만명) '히말라야'(776만명) '공조'(782만명) 등 어떤 소재로도 따뜻한 휴먼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제작사 JK필름 작품. 이 영화도 배우들 일상 연기와 재치 있는 대사가 첫째 매력 포인트다. 이병헌은 이종격투기 선수 스파링 파트너로 나섰다가 발차기 한 방에 침 흘리며 기절하고, 목 늘어난 면티에 운동복 차림으로 껄렁껄렁 동네를 배회한다. 서번트증후군 청년을 어눌한 말투와 끊임없는 손동작으로 표현해 낸 박정민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영화가 주는 감동의 대부분은 진태가 형, 엄마와 나누는 감정적 교감으로부터 온다.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서 훌륭한 연주를 해내고 기립 박수를 받는 클라이맥스 역시 익숙한 감동을 보장한다. 가슴 따뜻한 눈물 한 방울을 원하는 겨울 관객에겐 만족스러운 120분이 될 것이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