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니어층 겨냥한 제품 쏟아져 틀니·임플란트 많이 한 어르신 맛과 형태는 유지하면서 씹히는 식감 살린 제품 선호
"20년 동안 떡국 한 번 마음 편하게 못 먹어 봤어요. 질긴 고기는 엄두도 못 냈죠."
60대 초반부터 틀니를 했던 양병인(80)씨는 그동안 딱딱하거나 이에 달라붙는 음식은 먹지 못했다. 씹다 보면 잇몸이 욱신거리는 데다 자칫 틀니가 빠질까 봐 신경이 곤두서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양씨처럼 치아가 불편하거나 소화 기능이 약화돼 원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시니어층을 위한 '실버푸드(고령 친화식품)' 시장이 열리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6년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조사'에 따르면 2011년 5104억원 규모였던 실버푸드 시장은 지난해 약 1조1000억원 규모로 비교적 완만하게 성장했지만, 2020년엔 16조원 규모로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역삼동 아워홈 본사에서 70~80대 참가자들이 아워홈의‘효소식 연화 기술’로 제조한 도시락과 떡국을 맛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아워홈, 효소를 이용해 육류 30~70% 부드럽게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역삼동 아워홈 본사 조리체험관 '오키친'. 양씨를 비롯해 60~80대 5명이 최근 출시됐거나 개발 중인 실버푸드 제품을 시식했다. 메뉴는 소고기 사태찜, 연근·우엉 조림, 데친 브로콜리 등으로 구성된 도시락과 떡국. 효소(酵素)를 활용해 음식을 부드럽게 만드는 '연화 기술'로 제조한 음식이다. 육류의 경우 프로테아제(Protease) 효소를 고기에 침투시켜 일반육보다 30%에서 최대 70%까지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아랫니에 임플란트를 한 신덕수(78)씨는 일반 사태찜을 들다 내려놓았지만, 연화한 사태찜을 씹으면서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신씨는 "임플란트를 한 이후론 돼지 수육 외에는 잘 먹지 못했다"며 "좋아하던 고기를 불편함 없이 먹으니 젊었을 때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했다. 치아 보철을 한 이길자(75)씨는 "브로콜리같이 딱딱한 채소를 먹으려면 흐물흐물할 정도로 삶아야 하는데, 식감과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씹기 편해 먹을 만하다"고 했다.
나트륨 함량을 줄인 저염 된장과 매운맛을 낮춘 김치도 참가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양병인씨는 "나이가 들수록 짠맛을 잘 느끼지 못하다 보니 음식을 짜게 먹는 경향이 있다"며 "나트륨 함량을 줄이더라도 일반 제품보다 싱겁게 느껴지지 않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현대그린푸드, 고압·고열 증기로 맛·형태 유지하며 부드럽게
현대그린푸드의‘포화 증기 연화 기술’로 만든 가자미 튀김. 뼈째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 시니어층에 부족한 칼슘·단백질 섭취에 효과적이란 평가다.
같은 날 오후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컬쳐파크. 현대그린푸드는 소고기 찹스테이크와 가자미튀김을 내놓았다. 현대그린푸드는 지난해 말 '포화증기 연화식 조리' 기술을 개발하고, 연화식 전문 브랜드 '그리팅 소프트(Greating Soft)'를 출시했다. 포화증기 조리는 고압·고열로 조리를 해 식재료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음식은 훨씬 부드럽게 하는 기법이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60대 이후 칼슘·단백질의 섭취는 줄고 대신 탄수화물 섭취는 과다해지는데, 영향 균형을 위해 칼슘·단백질이 높은 식품을 우선 제품화했다"고 설명했다. 찹스테이크를 맛본 연규원(63)씨는 "오른쪽 어금니가 없어 수년째 왼쪽 이로만 식사를 했는데, 오랜만에 오른쪽 이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게 요리를 맛보기 어려운데, 시니어층을 위한 연화식 게 요리도 상품화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자미 튀김을 맛본 "김정희(62·가명)씨는 "생선 가시를 잘못 씹어 이를 다칠까봐 잘 먹지 못했는데, 건강을 위해 뼈째 먹을 수 있는 연화식 생선이 시니어층에 인기가 높을 것 같다"고 했다.
농림축산부는 올해부터 실버푸드 산업 표준을 마련해 표기에 들어갔다. 시니어층이 자신의 신체 상황에 맞게 적합한 음식을 구매할 수 있도록 구분하기 위해서다. 1단계인 '치아 섭취', 2단계 '잇몸 섭취', 3단계 '혀로 섭취'로 나뉜다. 식품업계에선 한국의 시니어 소비자들은 씹기 편하지만 식재료 본연의 식감은 유지하는 제품을 선호할 것으로 내다봤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본래 일식은 딱딱한 음식이 많지 않아 일본 시니어층도 부드러운 실버푸드를 선호하지만, 한국인들은 씹는 맛이 강한 음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시니어층에서도 식감이 있는 실버푸드가 인기일 것"이라며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1~2년 내에 다양한 실버푸드 제품이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