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17 10:48

아침마다 스마트폰 ‘알람 앱’ 소리에 깬다. 날씨는 ‘일기예보 앱’으로 보고 기지개 켜며 출근 준비를 한다. 오늘 막히는 곳이나 아침에 탈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 도착 시각을 ‘교통 앱’을 통해 확인하고 집을 나선다. 그 사이마다 스마트폰 ‘SNS 앱’을 열어보면서, 나에게 누가 손짓이나 말을 걸어왔는지, 어떤 중요한 소식을 알려왔는지 등을 확인한다.

아침은 물론 낮부터 저녁까지 일상의 모든 일과 관련된 ‘생활 앱’들과 대화를 나눈다. 요즘 이러한 행동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니 꿈에서도 이어지기도 한다. 스마트폰이 진화할수록 이래저래 우리 삶에 더 달라붙는 듯하다. 24시간 365일 손에서 가까울수록, 또 자주 열어볼수록 안정감이 생기는 현상은 이미 습관을 넘어 새 문화로 정착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즐겁게 살아있기를 바란다. 그 방법의 하나가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름을 알리거나 자신의 그림이나 사진 등 작품을 남기려고 한다. 또 주소나 스마트폰 번호 등 다양한 신상정보마저 공개한다. 개인정보가 명예욕과 동일 시 되는 듯하다.

불과 10년 남짓한 스마트폰 시대다. 짧은 기간임에도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소속이나 위치 등 관련성 짓기에 큰 의미를 둔다. 이는 가끔 자신의 존재감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존재감을 두드러지게 하려고 서로 인맥을 쌓는다.

사진=조선일보DB

첨단 문명이 발달할수록 기존 국가 중심의 역사와 그 정통성의 틀이 점점 깨지고, 기업 중심의 새로운 틀이 형성되고 있음을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다. 영국 런던정경대 명예교수이자 영국의회 종신 상원의원인 앤서니 기든스는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시작해 불과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세계는 제4의 산업혁명기인 디지털 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과 그 이후 트위터를 통한 분노 표출을 새로운 틀이 중심 역할을 한 사례로 들고 있다.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변화의 핵심으로서 스마트폰이 급격한 세계사의 지각 변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 들어 세계 각국은 새로운 시대 틀의 중심체인 구글, 네이버, 야후 등의 인터넷기업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국의 힘을 표출한다. 여기에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메신저, 카톡, 위챗 등의 대화 앱이 그들 나름대로 다국적 국가 형태의 복합적 힘으로 나타나고 있다. 너나할 것 없이 이들 힘과 연관되어 있음을 느끼기 위해, 미국 대통령 트럼프처럼, 이런 앱들을 스마트폰에 넣고 다닌다.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많게는 매일 10~20회 이상, 적어도 몇 회 이상 이들 앱으로 ‘나를 나타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지’를 느끼곤 한다. 서로 아는 지인끼리 서로 안부를 묻고 도움 되는 정보를 주고받는 수단의 틀이라면 금상첨화다.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틀에 나는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가?’이다. ‘이들 앱에 매달릴수록 과연 즐거운지? 또, 그것이 현대인으로서의 행복인지?’ 등의 확인이다. 먼저 나를 나타내기 위해 만드는 정보가 얼마나 멋진가 하는 자문자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내가 만든 정보를 보는 것과 또 보고 어떻다고 느끼는 것과 관계없이 내 욕구 분출 차원에서 만든 정보가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내 자존감이나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위해 스마트폰과 이별하고 싶은 마음도 드는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답답함이 몸을 움츠리게 한다.

더욱 문제 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정보가 전부가 되어야 한다며 내가 유통한 정보가 새로운 틀의 중심이라 여기고 무작정 전파하는 일이다. ‘나는 이러한 느낌에 공감하고 있다’는 존재감 표출이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포퓰리즘을 만들고 있다.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거나 상업적 수익을 위해 개인을 이용하려는 수많은 앱이 인생의 즐거움을 흐리게 하고 있다. 여기에 언론매체나 이익집단, 기업 등 조직에 의해 펼쳐지는 ‘사실과 섞인 가상 정보’의 전파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행태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 상황에서 서로 도태되지 않으려 눈치를 보거나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도 하는데, 나 또한 마찬가지다.

첨단 문명인 스마트폰과 그 앱이 현대 생활의 중심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삶의 수단일 뿐이다. 이를 목적으로 여기려는 현대인에게, 아니 내게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나부터라도 심심해서 스마트폰을 여는 일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해야겠다. ‘나 자신을 나타내는 정보를 만들고, 그 정보를 서로 이용하는 시대’에 그칠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정보를 만들고, 나를 아는 사람들과 함께 공평히 나누는 삶’이 필요하다.

걱정컨대, 이 글도 섣부른 나만의 희망 사항일지 모른다. 새로운 시대 환경이 조성될 때마다 ‘내가 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각각 희망 사항은 존재했다. 그런데 칼이 총이 핵이 잘 사용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희망 사항을 언제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스마트폰의 의미는 아직은 칼에 비교하기엔 말도 안 되게 이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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